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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67. 시간이 쌓이는 만경강 다리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67. 시간이 쌓이는 만경강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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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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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 만경교 기념스크린
구(舊) 만경교 기념스크린

만경강에 은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갈대와 물억새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군락을 이룬 모습은 봄철 벚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오래전부터 만경강 갈대밭이 백리길에 이른다 하여 이곳을 ‘노전백리(蘆田百里)’라 불렀는데 그 명성 그대로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을 여자의 마음에 빗대어 갈대와 같다고 했는데, 사실 그 갈대라 생각한 은색의 꽃이삭은 억새이다. 벼과에 속하는 둘은 헷갈릴 수 있지만, 구별방법은 의외로 쉽다. 억새는 정갈한 은빛머리이고 갈대는 갈색의 부스스한 사자머리를 하고 있다. 혼돈되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어찌 갈대와 억새뿐 이겠는가. 그들과 함께 만경강에 어우러져 있는 ‘새창이다리(만경대교)’와 ‘목천포다리(구(舊)만경교)’가 그렇다.

만경강 다리들이 있는 마을에서는 만경강을 지나는 다리를 모두 ‘만경강 다리’라고도 불렀다. 그래서인지 1933년 준공된 새창이다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다리라는 잘못된 정보가 알려지게 되면서 널리 퍼졌다. 사실, 한강의 최초 인도교인 한강대교는 1917년 준공되었고, 만경강만 보더라도 1928년 준공된 만경교가 새창이 다리인 만경대교보다 먼저 놓인 콘크리트 다리이다. 당시의 고증은 ‘만경강교준공’이란 제목 아래 “백구면 유강리에서 준공식을 거행 하얏다더라”라는 1928년 2월 16일자 기사와 “8월 2일 성대한 준공식을 거행했다”는 만경대교 준공을 알리는 1933년 8월 4일자 기사로 남아있다.
 

만경강교 준공 (동아일보 1928년 2월 16일자) 기사와 만경대교(새창이다리) 준공 (동아일보 1933년 8월 4일자)기사.
만경강교 준공 (동아일보 1928년 2월 16일자) 기사와 만경대교(새창이다리) 준공 (동아일보 1933년 8월 4일자)기사.

연장 길이 550m인 ‘만경교’는 지금의 김제시 백구면과 익산시 목천동을 잇는 다리로 만경강의 큰 포구였던 목천포에 위치했다. 그 목천이란 지명은 옥야현에 속한 곳으로 남쪽에 위치한 천(川)을 ‘남쪽의 내라 하여 남(南)의 내’라 했는데 ‘나무내’로 불리다 ‘남’이 ‘나무’로 인식되면서 ‘목천’이 되었다. 또 다른 설로는 목천(木川)이라는 이름을 가진 총각 뱃사공의 사연이 있다. 아름다운 처녀를 짝사랑한 청년이 처녀가 세상을 뜬 것을 알게 되자 상사병을 앓다가 죽자 그 이름을 따 목천포구라 했다고도 한다.

만경교는 만경대교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일제가 곡물을 수탈하기 위한 통로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1928년 준공되었지만, 오랜 시간의 흔적과 켜켜이 쌓인 포구의 수많은 사연이 깃든 곳이라 그런지 만경교란 정식 명칭보다 마을에서는 ‘목천포다리’로 불렀다. 세월이 흘러 다리가 노후화되어 옆에 새로 다리가 놓이면서 기능을 잃고 폐교량이 되자 구 만경교로 불렀다.

1990년 새로운 다리에 역할을 넘기기 전까지 62년간 호남평야의 중심에서 지역의 추억을 잇고 26번 국도의 통로를 연결해 준 다리였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다리였고, 6.25 전쟁 때에는 우리나라가 해병대를 설립한 후 처음으로 작전을 실시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서슬 퍼런 군부 시대에는 지나는 행인을 검문하던 초소가 다리 양쪽에 있었고, 봄철 강변을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벚꽃축제가 화려하게 열리던 장소였다. 또한, 윤흥길 작가의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기억속의 들꽃』의 배경이 된 다리이기도 하다.

“푸른 하늘 바탕을 질러 하얗게 호주기 편대가 떠가고 있었다. 비행기 폭음에 가려 나는 철근사이에서 울리는 비명을 거의 듣지 못했다...눈길을 하늘에서 허리가 동강이 난 다리로 끌어 내렸을 때, 내가 본 것은 강심을 겨냥하고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한 송이 쥐바라숭꽃이었다.” 소설 속 만경강 다리로 등장한 만경교는 이미 소중한 문화자산임이 분명한 다리였다.

지역에는 매우 의미 있는 다리였지만,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고 주변 경관을 저해하며 만경강 유수소통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로 1988년 8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노후교량으로 분류되어 철거 대상이 되었으나, 주민의 이동통로와 벚꽃축제에 이용하기로 한 마을의 의견에 따라 철거를 보류했다. 그러다 쓰임이 줄어들자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만경강 하천환경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2014년 12월 철거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는 다리를 두고 ‘존치냐 철거냐’에 대한 많은 공론이 오고 갔다.

당시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주민과 지자체와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구 만경교의 일부 교량을 존치하여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경교를 기억합니다”란 컨셉트로 2015년 6월에 교명판과 난간 등 기존 교대부와 슬래브 2경간인 26m를 양안에 남겨 기념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을 하고 나머지는 철거했다.

새창이다리(만경대교).
새창이다리(만경대교).

김제시 청하면과 군산시 대야면을 잇는 만경대교도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포구인 신창진(新倉津)의 이름을 새창이라 불리던 것이 만경대교에도 쓰여져 ‘새창이다리’가 된 것이다. 1928년 착공되어 1933년 준공된 만경대교는 노후화로 인한 사고 우려로 차량 통행이 금지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다리 곳곳이 금이 가고 일부 콘크리트가 떨어져 철골이 드러날 정도로 흉물스럽게 부서지는 등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사진을 찍고 낚시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두 다리는 둘 다 ‘만경강 다리’로 불리며 닮은 역사의 흔적을 지녔지만,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다. 구 만경교는 기념 공간만을 남기고 부분 철거되었고, 새창이다리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철거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은빛 물결로 빛나던 만경강에 철새들이 찾아들고 흰눈이 내리게 되면 그 두 다리는 또 다른 시간 속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부를 것이다. 겨울의 문턱에서 만경강을 찾아 갈대와 억새들의 속삭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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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 2019-11-29 21:15:11
억새와 갈대에 고장의 역사자원인 만경대교와 구만경교를 비유하셔서인지 헷갈리던 사실을 이번에 확실히 알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