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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은 귀한 거름이다
폐업은 귀한 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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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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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조지훈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어린 시절,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을 보고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 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매미와 똑같은 생김새인데 안이 비어 있는 희한한 형상이었다. 그 매미 허물에서 파킨슨병 치료 효능을 찾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매미 허물 추출물을 파킨슨병에 걸린 쥐에게 5일간 먹인 결과 먹지 않은 쥐에 비해 운동 기능이 2~4배나 향상됐다고 발표했다. 동의보감 약용 곤충 기록에도 나와 있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도 새삼 놀랍다.

자연 생태계는 놀랄 만큼 뛰어난 자기 정화능력과 순환 기능이 있다. 생명이 끝난 낙엽과 주검도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이 되고 치료제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문화예술 생태계’ ‘경제 생태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생태계’의 의미를 빌려 강조하는 구호가 많다. 특히 ‘생태계 조성’이라는 말은 경제정책 회의나 경제 관련 세미나에 더 자주 등장한다.

생태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분해자로 이뤄지고, 죽은 생물이 다시 생산자의 자양분이 되는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럼 우리 지역경제, 골목상권과 중소기업의 구조는 어떤 모양을 갖춰야 생태계를 이루는 것일까?

골목의 상점들이 시대의 변화로 인해 문을 닫을 때, 그 상점들의 지나온 시간이 새로운 창업자들의 자양분이 되는 순환 구조. 우리 지역의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그 기업의 기술은 다음 주자를 위한 ‘지역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폐업 후에도 자신의 경험과 공공정책을 통해 다시 주어지는 재기의 기회. 이것이 지역경제의 생태계 조성이 아닐까?

그래서 폐업이나 사업실패가 지역경제의 자양분이 되고, 기업가에게는 재기할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분해자’ 역할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실패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국의 소상공인지원센터 내에 폐업지원 업무를 전담할 부서도 설치하고 있다. 실패경험을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러나 원활히 순환하는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산자부, 중기부, 과기부 등의 눈에 띄는 창업지원 예산만 얼추 1조 1천억 원이 넘는다. 반면, 폐업 혹은 재기 지원사업 예산은 1천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폐업과 재기에 대한 수요에 대비하면 현저한 불균형이다. 폐업과 실패를 자양분으로 만들기 위한 인식전환과 정책 변화를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경제의 성공 신화만을 열렬히 숭상하던 70~80년대를 지나 경제의 정의와 민주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동안 생산과 소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분해자’의 역할에 눈을 돌릴 때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에서 최고의 발명이다. 죽음은 삶을 바꾸는 대리인이자 낡은 것을 치우고 새로운 것을 열어주는 예술가”라고 했다. 죽음과도 같은 ‘폐업’을 ‘두려운 것’ ‘절망적인 것’으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위한 연결고리로 삼는 것. 안타까운 비즈니스의 사멸과 소멸을 양지로 이끌어 이른바 ‘웰다잉’하는 전환을 모색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시작과 재도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단풍이 모두 떨어지고 낙엽이 쌓이고 있다. 썩는 것은 잘 썩혀서 다음 씨앗을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게 해야 한다. 쓸모없어 보이던 매미 허물도 귀한 약재가 되는 세상이다.

/조지훈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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