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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전북도립미술관, 귀한 ‘수묵정신(水墨精神)’을 보여주다!
[특별 기고] 전북도립미술관, 귀한 ‘수묵정신(水墨精神)’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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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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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섭 전 문화재청장·고려대 명예교수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두 달 동안(2019.10.01-12.01) 전북도립미술관(관장 김은영)에서 귀한 전시가 열렸다. ‘수묵정신전’은 전북의 역사 문화 저력이 돋보이는 기획이었다. 막상 전시장에 들어가 보니 기대 이상의 놀라움과 감동이 느껴졌다. 요즈음 보기 드문 수묵화 전시인데다 이응노, 장우성, 권영우, 서세옥, 김호석 등등 이름 있는 대가들과 젊은 세대의 작품까지 알차게 꾸민 전시 의도에 공감이 갔으며, 무엇보다 은은한 묵향의 울림이 오래 남는 진실성이 깃든 전시였다.

이번 수묵정신전은 전북이어서 가능하고, 전북에 어울리며, 전북답다는 인상을 남겼다. 제2전시실에 전시된 이삼만, 이정직, 황욱, 송성용 등 앞 세대 전북 어르신들의 서화 작품은 수묵정신의 수준을 잔잔하고도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전북과 수묵정신’은 잘 결속되고 살아 있었다. 수묵정신이야말로 예향 전북의 다양한 문화자산 가운데 으뜸 품목으로 맥맥히 자리매김할 가능성 자체이며, 그리하여 전북은 이 땅의 수묵정신을 선도할 역사적 책무를 가지기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시대가 바뀌어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고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체 선호하는 경향이 짙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수묵의 가치란 시공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묵은 여러 색 가운데 하나에 그치지 않고 차원을 달리하는 의미를 가진다. 수묵은 여백(餘白)과 짝하여 사물과 존재의 본질을 그려낸다. 그 근거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와 관련이 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이다. 문화는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것이요, 사람은 ‘향상하는 존재’라는 것이 문화시대에 유효한 인간관이다. 고래로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지향한 이상가치는 진(眞)·선(善)·미(美) 일치였다. 인격완성의 길에 내면이 평화롭고 고요(寂靜)한 상태에서 맛보는 미적가치는 ‘담박(淡泊)·소쇄(瀟灑)’, 즉 ‘맑고 시원함’이다. ‘맑고 시원함’은 단지 여러 맛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보편가치로서 누구든 그 경지에 도달하여 누리는 고상한 맛인 것이다. 요컨대 인격완성의 길에 쌓은 내공이 그대로 작품의 격조로 드러나는 것이다. 맑고 시원한 작품을 하려면 맑고 시원한 인품을 지녀야 한다. ‘예술이 생활이요, 생활이 예술’, 예술과 생활이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문예정신이다.

사람은 자유를 추구한다. 장자(莊子)는 가장 사람다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소요유(逍遙遊)’라 하였다. 유유자적(悠悠自適) 산야를 노니는 여유를 꿈꾸던 사람들이 산수(山水)를 그려 방에 걸어두고 보았다. 시·서·화(詩書畵)를 즐기고 산수정신을 담아내는 문예의 매체로서는 맑고 시원한 수묵이 제격이었다. 수묵은 농담(濃淡)의 무궁무진한 변화에 따라 실로 수많은 표정을 담아낼 수 있다. 동아시아 서화의 근간이 되는 붓과 먹, 필묵(筆墨)은 어떤 색채로도 대체할 수 없는 미묘하고 탄력 있는 낭창낭창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잘 다루어진 수묵은 시적(詩的)이고 기운생동(氣韻生動)한다. 장식성과 구구한 설명이 배제된 수묵은 고차원의 정신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수묵정신은 인간의 높은 정신 가치를 드러내는 길이기에 과거가 아니라 현재요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예향 전북은 각별한 감성과 끈기의 고장답게 의·식·주 생활문화를 풍성하게 발전시켜왔다. 뿐만 아니라 고상한 정신 가치를 지향하는 수묵의 세계에까지 성과를 낸 점에서 남다른 평가를 받을만하다.

수묵의 보편성에 눈뜨고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자 시도한 전북도립미술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수묵정신전! 이 의미 있는 기획 전시가 1회에 그치지 말고 예향 전북의 이름을 달고 국내와 국외 다양한 지역에서 순회전을 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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