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0-01-21 20:25 (화)
순례길에 남겨진 기억들
순례길에 남겨진 기억들
  • 기고
  • 승인 2019.12.10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카미노데산티아고(스페인어: Camino de Santiago)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목표로 다양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주로 프랑스 각지에서 피레네 산맥을 통해 스페인 북부를 통과하는 길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러시아, 핀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각지로 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길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길’은 프랑스 남부국경 생장피에드 (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 여정이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서부터 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에 20여 km 씩 걷는다면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한다. 연금술사 파올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걸어 더욱 유명해졌다. 2010년 한해만도 27만 명이 방문했다. 최종 목적지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중세시대에 기독교 순례자들의 중요한 순례길 중에 하나였다. 기독교 교리상 죄에 대한 보속으로 주어지는 대사 중에 산티아고 순례도 있었다

언제부터서 인가, 나이를 더해가면서 삶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 정리 장소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그냥 배낭을 메고 떠났다. 800km의 여정은 무리라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떠난 길이기에 걱정 반 설레임 반이었다.

순례길에선 모두들 걷고 있었다. 프랑스인도, 헝가리 사람도, 호주, 미국, 이태리, 영국 또 우리 한국인들도 걸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가족들과 어우러져서 아님 순례길에서 처음 만나 우정을 나눈 낯선 친구와 걸었다. 나이 어린 청소년도, 젊은이도, 나이 지긋한 중년도, 머리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도 걸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게는 이런 힘든 여정을 결심해야만 했던 서로 다른 사연과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진 각자 생각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짐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묵묵히 짓 눌러오는 중력을 거부하지 않고 두 발로 버티어 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발가락이 부룹터서, 또 누군가는 근육통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달되어 오는 통증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모습 속에 한 가지 공통점‘ 있었다. 스쳐 지나며 서로에게 전하는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길“ 하는 인사다. 아니 어쩌면 ’힘내자고‘ ‘포기하지 말자고’ 고통과 아픔을 향해 스스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길 안내 표지판 위에, 벽면에, 다리 난간에, 아스팔트 위에, 누군가 그들만의 언어로 아픔을, 사랑을, 희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사랑이 얼마나 아팠을까, 껴안고 함께 울어 주고 싶었다. 출발선상에서 함께했던 지팡이가, 신발이, 양말이 버려져 있었다. 소원을 닮은 조약돌이, 몸에 지녔던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산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삶의 매 순간 순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곁에 두었던 손때 뭍은 것들을 하나 둘 버리는 연습이 아닐까. 아니 어쩜 익숙한 것으로 부터의 이별을 연습하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순례완주증명서를 받기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환했다. 기쁨, 희망, 그리고 감사가 표현되고 있었다. 짊어지고 아파했던 생각의 무게들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기며 하나씩 하나씩 길가에 버렸나 보다. 등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