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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라는 빈집, 박제되는 풍경
청년이라는 빈집, 박제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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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1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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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올해 가장 인상 깊게 본 ‘킬러콘텐츠’가 있다. 한 시사 주간지에서 4개월간 전국의 빈집을 찾아다니며 취재한 <‘빈집’에 울려 퍼지는 지방도시의 신음>이라는 기사다. 전국 지방도시의 공가율을 분석해 빈집이 생겨나는 원인과 지방도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자들의 정확한 시선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황폐한 빈집 사진과 영상을 마주하고는 은근한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현실 비극 속에서도, 희극을 만들어낸 지방도시를 알고 있다. 오래 방치된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심어 예술촌을 만들어낸 전북 완주군. 완주군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삼례읍 양곡창고를 2013년 복합문화공간인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켰다. 목공소와 미술관, 카페 등 7개의 문화시설이 있는 이곳은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예술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 시설 중에서도 단연 킬러콘텐츠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다. 국내 손꼽히는 책 장인 대표자가 운영하는 ‘책공방북아트센터’가 그곳이다. 책 만드는 문화와 기록하는 삶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전파하고 있는 대표는 지난달 출간한 『책기계 수집기』로 굵직한 출판상을 수상했고, 이에 앞서 책공방에서 7년간 손발을 맞춘 제자와 함께 만든 『책공방, 삼례의 기록』으로 의미있는 출판평론상을 받았다. 수상뿐 아니라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종이를 압착해 책을 만들 듯 매일매일 눌러 쌓아 올린 그들의 의지와 노력은 지방도시 읍내에서 거대한 우주를 키웠다고 해도 무방할 기록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예술촌 탄생과 함께 걸어온 유일한 브랜드인 사제의 미래는 꿋꿋해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제자인 직원이 최근 책공방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삼례문화예술촌 시설 직원 임면권을 가진 민간수탁기관이 바뀌고, 고용 재계약이 되지 않은 까닭이다. 수탁자의 태도가 비상식적이라는 측과 당연히 임면권을 가져야 할 수탁자가 왜 비난받아야 하냐는 시선이 엇갈리는 중이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군의 입장은 난처하겠지만, 미처 아무것도 막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모양새가 궁색해 보이는 건 나뿐일까.

그러는 사이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일명 문화게릴라라 불리는, 지역에 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들이 정작 지역에서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이런 청년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유지되고 내쳐지는지 똑똑히 지켜보게 하는 초미세현실을. 늙은 정치권이 청년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텅 빈 지방도시가 청년 잡기에 성을 다하지만, 있는 청년들은 다 놓치고 마는 풍자와 아이러니를. 이렇게 외면당한 청년들이 질린 얼굴로 짐을 싸고 다시 도시는 빈집으로 남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도시는 지속적으로 ‘단기계약직 청년’이라는 빈집을 지으며 청년들을 텅 빈 얼굴로 만들고 있다. 도시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청년에게서 나온다, 문화예술에서 나온다, 함부로 사라지지 않게 하는 힘에서 나온다면서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하는 지금 여기 박제된 풍경을 본다. 이 현실 세계는 빈집일까. 빈집의 일각일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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