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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0. 실상사 철불의 손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0. 실상사 철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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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0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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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1호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보물 제41호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의 신체 중 타인과 접촉이 가장 많은 곳은 ‘손’이다. 반갑다 악수를 하고, 손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손찌검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힘에 부칠 때 따스하게 잡아주는 손이야말로 그 자체가 위로이고 위안이다. 손을 말하는 특별한 명칭 중에는 부처님의 손을 뜻하는 ‘수인(手印)’이 있다.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을 살펴보면 다양한 손 모양을 볼 수 있는데, 어떤 의미를 지닌 불상인지 그 존명(尊名)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바로 그 ‘수인’이다. 수인은 고대인도의 제사의례에서 손동작인 무드라(mudra)에서 깨달음과 덕행 등을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으로 표현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각각의 손 모양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다 보니 여러 종류의 불상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수인이 된 것이다. 이렇듯 불상에서 손이 지닌 의미가 깊은데 남원 실상사 철불의 손은 본래의 철로 된 손이 아닌 나무로 만든 손이 끼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수인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실상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한 홍척스님이 828년 신라 흥덕왕 대에 창건한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사찰이다.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산이 아닌 완만한 들에 자리한 것이 특별하고, 수도 경주가 아닌 남원에 대형 철불이 조성된 것도 획기적이다. 실상사는 ‘실상사가 번창하면 나라도 융성하고 실상사가 쇠락하면 국운도 쇠퇴한다’는 말에 따라 왕실의 후광을 받고 번창한 사찰이다. 액운을 막고 모자란 기운을 보충하는 의미로 설립하는 사찰을 ‘비보사찰(裨補寺刹)’이라 하는데, 실상사야말로 신라 말 기울어가던 국운을 바로 세우려던 염원으로 창건된 비보사찰이자 호국사찰이다.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의 부분사진.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의 부분사진.

풍수지리에서 실상사가 자리 잡은 터는 지리산과 덕유산의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천왕봉을 마주하는 곳에 자리하여 지리산을 넘어 일본이 영산이라 여기는 후지산으로 대륙의 정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형세로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실상사는 이후 왜적의 표적이 되고 세조 때 큰불이 나 폐허가 되는 굴곡을 겪었지만, 억불정책이 만연했던 조선 때에도 임금인 숙종의 지원으로 중창된 기록이 남아있다.

실상사 비보의 흔적은 보광전에 있는 종에도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에 일본 지도를 새겨 종을 칠 때마다 일본 지도를 후려쳐 일본 땅의 기운을 교란시키는 의도로 1694년에 만들었다 한다. 일제가 우리 국토 곳곳에 쇠말뚝을 막아 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려 했다면, 실상사는 쇠로 만든 종과 철불 등으로 일본의 지운을 차단했던 것이다. 그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실상사 철불은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이란 정식명칭을 지닌 보물 제41호로 높이 269cm 최대 너비 203cm인 대형 불상이다. 840년에서 860년 사이로 추정되는 시기 실상사 2대 조사인 수철스님 때 엄청난 양인 철 4천근으로 조성한 철불이다.
 

실상사 보광전 종에 새겨진 일본지도.
실상사 보광전 종에 새겨진 일본지도.

신라 말 초대형 철불이 남원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후원을 받은 이유도 있었지만, 대규모의 제철산지가 있는 남원 지역의 특성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철이 많이 나고 지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만수천을 끼고 있어 물과 땔감이 풍부해 철을 조달하고 제련하기 수월했으며, 실상사가 번창하면서 조성된 것으로 보아 대형 철불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인력의 수급도 원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상사 철불은 넓적한 얼굴에 육계라 불리는 상투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세상사를 비춘다는 눈썹 사이의 흰 점인 백호가 뚜렷하고, 옆으로 긴 두 눈에 비해 코와 인중이 짧고 작고 두툼한 입술이 또렷하다. 목에는 가로의 세 줄기 주름인 삼도(三道)가 보이고 넓은 어깨부터 내려오는 법의(法衣)의 주름이 유려하게 흐른다.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하는 오른손은 올려 있고 중생계를 뜻하는 왼손은 내려져 있는데, 세월의 풍파 속에서 훼손된 그 손뿐 만이 아니라 등과 다리의 일부가 나무로 되어있다.
 

실상사 약사전에 전시된 철불의 손과 철불의 나무손 부분사진.
실상사 약사전에 전시된 철불의 손과 철불의 나무손 부분사진.

약사전에 모셔져 약사불로 알려졌지만, 원래 봉안처도 건물지의 규모와 철정이 가장 많이 발견된 위치로 보아 현재의 보광전 아래 금당지로 추정된다. 1987년 철불의 해체 수리과정에서 철제의 손과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다수의 부장품이 철불 몸통에서 발견되었다. 복장에서 발견된 수인이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아미타불의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이라 아미타불일 수 있고, 시기적으로 중창과정에서 수인이 교체된 노사나불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어찌 되었건, 발견된 철불의 손은 현재 철불이 모셔진 약사전 안에 연꽃과 함께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물로 손을 복원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철불이니 철로 된 손이라 맞겠지요. 그런데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복원한다는 게 자칫 훼손이 될 수도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예요. 하지만, 부처님 손이 나무로 되어있으니 손을 잡으면 철손보다 나무손이 더 따스할 것 같지 않나요.”라며 이야기하는 실상사 수지행자의 얼굴이 환하다. 또한, 절망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는다는 말을 전했다. 불상의 손이 처음 모습으로 복원 되지 못했더라도 그 여러 시간의 흔적이 더해 특별한 의미를 건네며 남겨져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철불과 한 몸을 이룬 나무의 손은 이미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안의 손이 되었으니 말이다.

새해에 다가오는 액을 막고, 복을 받으며 운을 트이게 하려거든 남원 산내면에 자리한 실상사를 찾아 철불을 만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는 지리산의 정기도 한껏 품고 한 해를 살아갈 지혜와 힘을 얻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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