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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바라기
개밥바라기별 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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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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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유난히 눈이 보기 힘든 올겨울 내내, 나는 개밥바라기별 바라기를 하고 있다.

개밥바라기별은 해바라기가 해 바라기를 하듯 저녁밥을 기다리는 개가 밥통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며 올려다보는 별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에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요즘 같은 한겨울에는 해진 후 두세 시간 동안 서쪽 하늘에 있다가 사라져 버린다. 3월 하순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다가 4월 중순 이후엔 새벽 해뜨기 전 밝게 빛나서 우리가 흔히 샛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성은 항상 태양 근처에 머물면서 해보다 먼저 떠오르거나, 해가 지면 따라서 진다. 때문에, 태양이 뜰 때는 날이 밝아오는 동쪽에서 그리고 해가 질 때는 서쪽에서 찾아야 한다. 목동의 별이라고 불리는 샛별은 비너스신과 동일시하여 사랑, 기쁨을 상징한다고 한다.

2019년이 저무는 어느 날 오후, 구이저수지를 찾았다. 해가 질 무렵의 구이저수지는 푸른 하늘을 담고 있었다. 그 하늘 한켠에 소나무 한 그루, 모악산 매봉으로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초승달, 그 위로 초롱초롱한 밝은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그 별이 바로 개밥바라기별이었다. 고창 구시포에서 만난 개밥바라기별은 푸르고 영롱한 구름 속에 떠 있어 마치 추상표현주의 회화 같았다. 색면 추상 화가들의 “신의 숭고는 가장 단순한 자연현상에서 발견된다.”라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푸른 하늘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황혼 무렵이나 새벽 해뜨기 전에 나타난다. 어둠과 밝음 두 빛이 공존할 때 나타나는 푸른색을 트와일라잇 블루(Twilight blue)라고 한다. 불어권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흰 실과 검정 실을 나란히 늘어뜨리면 어느 게 흰 실이고 어느 게 검정 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요즘 나는 이런 블루에 푹 빠져 있다. 일몰 후나 새벽녘에 사진 작업을 하며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새벽달도 보고 개밥바라기별도 만난다.

국립 경주박물관의 기획전시 “신라를 다시 본다.”에 초대받아 신라 고분과 왕릉을 촬영한 적이 있다. 이때 트와일라잇 블루를 만났다. 해가 진 후나 새벽에 고분의 주인공인 왕들을 만나러 가면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그 황홀한 블루를 사진기에 담아 “신라, 그 푸른 밤.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였다.

노서동 고분과 감나무가, 황남대총의 능선 위의 보름달이, 황남동 고분군 143호의 표주박형 곡선에 새벽달이. 경주의 밤은 그렇게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1,600여 년 된 노동동 고분에 살고 있는 느티나무 푸른 가지 사이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풍경은 아마 몇백 년은 되었을 것이다. 신라의 왕들과 우리는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수백 년 동안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1960년대 초 ‘누보 레알리즘’의 이브 클랭(Yves Klein)이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라고 자신의 고유색으로 특허받은 파랑색을 “클랭블루”라고 한다. 그에게 푸른색은 가장 순수하고 무한한, 무(無)에 접근한 색채였다. 푸른색, 하면 떠오르는 바다나 하늘은 경계가 없어 블루는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의 색이기도 하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색이지만 정말 깊은 맛이 나는 색, 블루.

저녁식사 후, 따뜻한 목도리에 편한 신발 신고 푸른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개밥바라기별을 만나러 나가보는 건 어떨까?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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