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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2. 어느 시기에나 있는 두려움, 전염병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2. 어느 시기에나 있는 두려움,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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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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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를 몰아내려 지낸 굿의 풍속화와 천연두 앓은 흔적이 남은 오명항 초상(경기도 박물관 소장).
천연두를 몰아내려 지낸 굿의 풍속화와 천연두 앓은 흔적이 남은 오명항 초상(경기도 박물관 소장).

“염병하네!”라고 국정논단의 몸통인 최순실에게 시원하게 외쳤던 환경미화원의 일갈이 한동안 화제였다. 당시 사이다 발언으로 알려진 그 말에 등장한 ‘염병’은 지금의 장티푸스로, 염병한다는 것은 ‘전염병에 걸려 헛소리한다’란 욕이다. 염병(染病)의 한자어는 염색에 쓰이는 염으로 병을 물들이듯이 옮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표현대로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우리 지역에까지 스며들어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전염병은 오래전부터 널리 유행하는 병이라는 의미의 역(疫)과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의 여(癘)로, 역려·역질·여역·역진 등 병의 종류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나라에서 치료와 관리에 힘을 쏟았지만, 귀신의 조화로 전염병이 번졌다고 여겨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를 행하고 굿을 통해 원통하게 죽은 귀신인 여귀를 달래기도 했다.

전염병에 관한 오랜 기록으로는, 기원전 15년인 백제 온조왕 4년 “봄과 여름에 가물어 기근이 생기고, 역병이 유행했다”는 것과 신라 선덕왕이 역진으로 죽고, 고구려에서도 전염병이 있었다는 것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다. 선조들이 지칭한 전염병의 개념은 광범위했다. 유행하는 질병은 물론이고 때로는 흉년이나 기근에 따라 생겨난 영양 부족도 전염병으로 간주했다. 그러다 점차 의학지식이 늘어나자 병에 대한 분류와 치료가 생겨났으며, 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에 등장했다.
 

남원 장티푸스 방역반 활동(출처-국가기록원).
남원 장티푸스 방역반 활동(출처-국가기록원).

조선 시기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전염병은 지금의 천연두, 장티푸스, 콜레라, 홍역이었다. 홍역은 ‘제구실’, ‘제것’이라 부르며 일생에 한 번쯤은 치러야 하는 병이라 여겨 ‘홍역을 치른다’란 표현을 했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손님과도 같은 성향이 있는 전염병을 빗대어 홍역을 작은 손님, 천연두를 큰 손님으로 불렀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으로 시작하는 공익광고에 등장한 마마는 천연두이다. 병을 옮기는 신이 두려워 마마라 높이 부르거나 두창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명의인 허준은 선조의 아들이자 훗날 광해군의 천연두를 완치시켜 신임을 얻어, 『동의보감』외 천연두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언해두창집요』를 왕명을 받아 저술했다. 또한, 오염된 물이 전염병의 주된 요인이라 밝힌 『신착벽온방』 등을 집필하고 수많은 백성을 치료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 외 숙종의 천연두를 치료한 유상이 유명하고, 천연두를 앓았던 정약용이 집필한 『마과회통』이 있으며 지석영은 『우두신설』을 저술하여 천연두 치료에 큰 업적을 남겼다.

현종 때 『조선왕조실록』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다 기록할 수 없고 특히 삼남(三南)이 더욱 심하고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 더 하다”라 했다. 당시 삼남인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전염병 빈도가 높았던 것은 삼남길이 뻗어가는 곳에 문물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 전염병이 옮기 쉬운 조건이었고, 유난히 강우량이 많았던 기후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 9년인 1733년에는 전라도에 역질이 유행하여 2081명이 사망하였고, 영조 26년에는 역질이 크게 번져 여러 도에서도 여제를 지내고, 전라도에 근신(近臣)을 보내 여제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전라도 전염병과 우물사용금지에 관한 기사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전라도 전염병과 우물사용금지에 관한 기사

중종은 “전라도에 여역이 창궐하여 많은 백성이 사망하였다고 하니, 의원을 보내어 마음을 다해 구완하라.”명했다.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임금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사에 대해 조언하도록 하며 마음을 바르게 다잡았다.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정전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며, 제사나 연회에 연주를 금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근신함으로써 재해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전염병이 돌면 나라에선 백성들의 부역을 정지하고 공납을 연기하며 민생을 안정시킬 대책을 마련하였다. 구제와 치료를 맡은 관청인 활인서와 혜민서 등에서 병막을 가설하여 치료와 음식과 의복·약 등을 배급하기도 하고,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고, 연고가 없는 시신의 매장은 물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특히나 감옥의 문을 열고 청소를 하여 밀폐되고 협소한 장소에서의 전염병 전파를 막고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선별하여 석방하기도 하였다.

순종 때에는 콜레라가 퍼지자 경시청은 마을의 공동 우물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인도의 풍토병으로 알려진 콜레라는 일본을 거쳐 고종 때 전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그저 ‘괴질’이라 불렀다. 그러다 쥐귀신이 잠자는 사람의 다리를 갉고 올라와 몸 안으로 스며들어 뱃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라 여겨 ‘쥣통’이라 했으며 ‘호열자(虎列刺)’라 부르기도 했다. 호열자는 콜레라의 중국 표기인 호열랄(虎列剌)을 음역하는 과정에서 랄(剌)을 자(刺)자로 혼동하며 생겨난 이름이다.

이제는 의학의 발달로 새로운 전염병에도 잘 대처하게 되었고, 선조들이 두려워했던 전염병들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았다. 뿌옇게 소독연기를 피우며 골목을 지나던 방역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주사가 무서워 떨며 팔뚝을 걷어 올리고 길게 줄을 서서 예방주사를 맞았던 일도 이제는 아득하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 발전하듯이 변이를 통해 점점 강해지는 바이러스가 두렵다. 그럼에도 전염병 대응은 지난 사례의 철저한 복기로 향상되고 있다. 바라건대, 이제 더 이상의 피해 없이 순하게 지나가 우리의 일상이 평온하고 지역의 곳곳이 사람들의 온기와 활기로 넘쳐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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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02-14 09:59:09
제가 정년을 2년 늦은 올 3월말에 하는데 제가 어렸을 때는 천연두나 홍역을 치루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출생신고를 홍역을 치루고 나서 하느라 늦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전염병의 덕을 본 셈이지요. 요즘은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 등이 흔하지 않는 대신 사스, 메리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형 새로운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것 같네요. 외출 후 손 씻기, 기침을 할 때 마스크 쓰기나 손수건으로 가리기 등 사소한 주의만 하면 괜찮다고 하니 조금 신경을 쓰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