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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도시
서점과 도시
  • 김은정
  • 승인 2020.02.13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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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도시 구석구석에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 ‘동네책방’의 진화가 예사롭지 않다. 독서 모임을 내세운 커뮤니티 활동은 기본이고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형식의 문화 활동을 주도하고 지원까지 해내는 역할이 곳곳에서 빛난다.

우리 지역에도 적잖은 동네책방들이 있다. 길게는 10년 가까운 역사를 안고 있지만 대부분은 4-5년 안팎의 나이 어린 책방들이다. 물론 그 사이 이름을 알렸으나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은 책방도 여럿이다. 사실 들여다보면 살아남아 있는 동네책방들에게도 궁핍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네책방’은 아니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태어나 지역을 지켜온 까닭에 오랫동안 ‘향토서점’으로 꼽혀온 서점이 있다. 5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전주의 ‘홍지서림’이다. 40여 년 동안 서점 주인으로 한 길 인생을 걸어왔던 창업주 천병로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스물세 살에 전주의 이름난 책방 ‘문성당’에서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1963년 자신의 책방을 열었다. 전주시 경원동 동문사거리의 모퉁이에 문을 열었던 다섯 평 남짓한 공간이 그 시작이다. 60-70년대 출판시장은 참고서와 교재가 중심이어서 지역 서점이 살아남으려면 참고서를 내는 출판사와 특약을 맺고 책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는 의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출판사 ‘일지사’의 판권을 따냈다. 서점이 활기를 얻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는데,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자정이 넘어서야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장사(?)는 호황이었다. 70년, 홍지는 공간을 50평 규모로 확장했다. 공간 확대를 계기로 교재전문서점에서 교양서적과 전문서적을 갖춘 종합서점으로 변신했다. 일반 독자들에게 책을 만나고 읽는 즐거움을 주는 서점의 존재를 일깨워준 시절이었다. 81년에는 동문사거리 시대를 접고 현재의 위치에 건물을 지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고난은 절정의 고비에서 찾아왔다. 개인적 어려움에 1997년 IMF의 한파까지 겹치자 그는 ‘부도’ 를 피하지 못하고 서점을 넘겨야 했다. 서점을 법인화해 서점을 일구어온 직원들과 주식의 절반을 나누겠다는 그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다행히 새 주인이 된 전주 출신의 소설가 양귀자씨는 부침이 심한 여건에서도 서점을 일으켰다. 그 덕분에 ‘홍지서림’은 살아남은 힘만으로도 이 도시의 역사가 됐다.

진화하는 동네책방들도 이 도시의 역사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낼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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