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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전북여행] 완주 백여리 겨울 스케치 여행 : “어머니 밥상 같은 구수한 손맛과 정이 있는 곳“
[뚜벅뚜벅 전북여행] 완주 백여리 겨울 스케치 여행 : “어머니 밥상 같은 구수한 손맛과 정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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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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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구이면 백여리의
겨울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로 가기 위해 전주 974번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송천동에서 전주 시내~평화동~구이면을 지나 한참을 달려 정자리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십여 년 전, 어느 그림 모임에서 겨울 풍경을 보러 간다고 하길래 따라갔던 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조용하고 고요한 마을 풍경 그대로입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목, 백구 2마리만이 아는 척을 해줍니다.

바로 옆, 문 닫힌 ‘백여정미소’의 오래된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완주 오봉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 이따금 씩 등산객들이 오고 가는 곳입니다. 저도 등산해볼까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옛날 같지 않아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오니 반가운 마음에 구석구석 더 걷고 싶어집니다.

전주 시내와는 사뭇 다른 풍경. 버스를 타고 30~40분 남짓 온 것 같은데 전혀 다른 풍경과 공기가 느껴집니다. 여행이 이래서 좋은 건가 봅니다.

걷다 보니 정자마을을 알리는 이름이 보이고 정자교 다리가 보입니다. 딱히 목적지는 없지만 길이 있으니 일단 걸어봅니다.

산 아래로 색색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대부분 집수리를 마쳐 예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소박한 마을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다리를 지나 한참을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니 나무가 빽빽이 심어있는 곳에 접어들었습니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만이 낯선 여행자의 방문을 알아봐 줍니다.

아무 데나 걸터앉아 색연필을 꺼내고 이것저것 그려보기 시작합니다.

영하 5도의 꽤 추운 날씨, 의욕 넘치게 맨손으로 연필을 잡습니다. 완주의 차가운 겨울을 직접 마주하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메마른 이 땅에도 곧 꽃피는 봄이 오겠지요.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경운기 한 대에 시선이 갑니다. 별다를 건 없지만, 경운기의 입체적이고 복잡한 구조, 정겨운 그 모습이 좋아 종이에 담았습니다.

 

칼칼한 김치찌개와 추억이 있는 곳
<백여상회>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니 밥때가 됐네요. 배가 고파 옵니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어느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오봉산 등산객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쉼터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언뜻 보면 동네슈퍼 같지만, 김치찌개 백반과 라면도 먹을 수 있는 밥집이기도 하지요.

함께 간 일행이 이곳에 가고 싶다고 얘길 했던 터라 들어가긴 했는데, 어쩐지 가게 분위기가 익숙합니다.

십여 년 전, 이곳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여섯 명이 좁은 가게에 들어앉아 허겁지겁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 먹었는데 참 맛있었거든요.

구석구석 살펴보니 가게도 주인아주머니도, 아저씨도 많은 시간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도 함께 말이죠. “사장님! 사장님!” 한참을 불러도 나오지 않으시길래 테이블 의자에 무작정 짐을 풀고 기다렸습니다.

조금 지나자 그제야 인기척을 들으신 듯 아주머니가 나오시네요. “저희 김치찌개 주세요~” 주문을 받자마자 뚝딱뚝딱 안에서는 분주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김치의 시큼한 내음이 폴폴 풍겨오고 배에서도 난리네요.

기다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김치찌개 한 상이 뚝딱 차려졌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언뜻 보니 찌개 속에 김치 반, 고기 반입니다. 두툼한 돼지고기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네요.

그 옆에 펼쳐지는 반찬 8종 세트. 다른 것보다도 어렸을 때 자주 먹던 참죽나물이 반가웠습니다. 예전에 먹던 그 맛입니다. 요즘 마트에서 사 먹는 김 가루와 비슷한 맛이 나지만, 먹어보면 오묘한 향과 식감이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흔히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죠.

언제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해치운 밥 한 공기, 그리고 김치찌개가 바닥을 보입니다. 반찬 하나하나가 맛깔스럽고 소박한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입니다. 무심한 듯 계속해서 음식을 주시는 주인아주머니. 정이 많은 분입니다. 예전에도 이곳에 와 밥을 먹었다고 아는 척을 하니 그제야 표정이 풀리며 반갑게 대화를 풀어갑니다.

 

가래떡 구이와 커피 한 잔
<오봉산정>

이제야 겨우 어색함이 풀어지게 됐는데, 벌써 가방을 메고 나설 시간입니다. 갈 길이 머니까요. 주인 내외분과 긴긴 작별 인사를 마치고, 오봉산 주유소 쪽으로 터벅터벅 걷습니다.

이제는 영업하지 않는 텅 빈 오봉산 주유소의 전경이 조금 쓸쓸하네요.

맞은 편, 또 다른 가게 간판이 보입니다. 가게 입구를 보니 식당인 것 같은데, 커다란 커피 잔 풍선이 서 있습니다. 카페도 같이 하나 봅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도 나눌 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추운 날씨라 등산객도 손님도 많지 않은가 봅니다. 카페 주인이 반갑게 저희 일행을 맞아줍니다. 친절하고 살가운 말투의 주인분은 가게 밖에 곶감이 있으니 커피 나올 동안 드시라며 정다운 말 한마디를 건넵니다. 집에서 말린 곶감은 무슨 맛일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커다란 곶감 하나를 따서 먹었는데, ‘이게 웬걸?’ 너무 달고 쫀득쫀득한 게 완전 꿀맛입니다. 이래서 ‘완주 곶감이 으뜸이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더 먹고 싶었지만, 맛본 걸로 만족하고 카페로 들어갑니다.

주인분께 ‘제가 먹어본 곶감 중에 제일 맛있었네요!’ 라고 말을 하니 환하게 웃으시며 커피를 내옵니다. 커피와 함께 말린 사과, 감이 서비스로 나오네요. 주문한 가래떡 구이의 비주얼은 기대 이상입니다. 통통하게 구워진 떡이 군데군데 갈라진 걸 보니 잘 구워졌네요. 겉은 바삭바삭 속은 쫀득~ 가래떡과 아메리카노의 조합이 정말 환상입니다. 커피도 전문적으로 배우신 것인지, 원두에 관해 설명도 해주시고 실제 커피 맛도 좋았습니다.

사실 이곳에서는 닭 요리를 먹어야 하는 건데 식사를 하고 온 터라 백숙 요리는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지나간 추억도 곱씹어보고 오늘 걸었던 길도 돌아보며 백여리에서의 하루를 정리해봅니다.

봄이 오고 날씨가 좀 더 풀리면 등산객들의 발길도 많아지겠지요. 그때는 봄 내음 폴폴 나는 오봉산을 만끽하고 돌아오는 길 백숙에 막걸리까지 한잔 걸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여상회>
김치찌개 7,000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453

<오봉산정>
아메리카노 2,500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오봉산길 102

/글·사진·그림 = 김미나(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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