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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전북문화] 용굴암 : 아이와 함께 실록길 걸으며 역사 기행
[반짝반짝 전북문화] 용굴암 : 아이와 함께 실록길 걸으며 역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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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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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려니 심술이 났는지 궂은 겨울비 내린 날, 2019년 불꽃 문학상을 받은 장은영 동화작가와 함께 내장산 실록길을 걸었습니다. 장은영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유생과 관리, 이름 없는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썼는데요. 책 제목은 <으랏차차 조선실록 수호대>입니다. 동화를 쓰기 위해 답사차 들렀던 곳을 오랜만에 저와 다시 걷게 되었습니다. 내장산에서 해설했던 김명주 문화해설사도 동행해서 이야기가 더 풍성한 산책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걸어 보실까요?

용굴암
용굴암

 

물길 따라 인물 따라 이어지는
실록길

내장사 천왕문 양옆으로 계곡이 흐르는데 왼편 금선계곡 쪽으로 가면 실록길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실록길은 천왕문-금선계곡-용굴 까지 이어지는 1.8킬로의 길인데 ‘용굴 가는 길’이라는 현수막과 ‘조선왕조실록길’이라고 새겨진 나무 기둥이 길 찾기를 도와줍니다.

용굴 현수막
용굴 현수막
실록길 표시기둥
실록길 표시기둥

순한 평지 길을 잠시 걷다 보면 데크로 만든 조망대가 있는데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세요. 그리고 내장산에서 가장 수형이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한번 찾아보세요. 경사가 있는 땅에서 자라 3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수령이 280년 된 나무라고 해요. 겨울이라 잎이 없으니 오히려 수형을 잘 볼 수 있고, 나무를 찾기도 더 쉬웠습니다.

단풍나무
단풍나무

실록길은 계곡의 양옆을 오가며 이어지기 때문에 다리를 자주 건너게 되는데 모두 8번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실록 1교부터 실록 7교까지의 다리는 관련 인물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여덟 번째 다리는 이름이 없어요. 조선왕조실록길을 걸은 사람들 모두가 오래오래 이 길을 마음에 간직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나만의 실록교’라고 이름을 지어보라고 합니다. 저는 나만의 실록교를 건너며 실록을 지키기 위해 애쓴 선조들의 이름을 되뇌어보며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리
다리
오희길
오희길

이제 용굴로 올라가 볼까요? 작가님이 답사차 왔을 때는 현재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좁은 철 계단이 있었는데 더 가팔랐고 위치도 좀 바뀌었다고 해요. 지금은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의 계단이 새로 놓였습니다. 총 221개의 계단을 오르면 신호대가 있는 오솔길을 돌아 드디어 용굴암 터와 용굴을 만나게 됩니다. 전주사고에 보관한 실록이 우마차 몇십 대, 상자만 62개 분량이었다고 하는데 이 가파른 길을 어떻게 올랐을까요?

용굴암 표지판
용굴암 표지판
계단
계단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임금이 왕위에 있는 동안 조정에서 일어난 일과 그 밖의 여러 사실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8명의 사관이 24시간 내내 교대로 임금의 곁을 지키며 기록했어요. 우리가 조선시대 역사를 잘 알게 된 것도 사극이나 드라마로 역사가 새롭게 해석되는 것도 다 방대한 실록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총 25대 왕에 걸친 472년의 기록을 담은 실록은 2077권으로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출처-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출처-문화재청)

실록은 화재 등 재해로부터 지키기 위해 4개의 사고에 분산해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춘추관, 충주, 성주사고가 불타버리고 말았어요. 이때 정읍의 유생 안의와 손홍록이 내장산 용굴암으로 실록을 옮겨 실록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내장산에 실록이 머문 기간은 370여 일, 용굴암을 거쳐 더 깊숙이 은적암, 비래암 등으로 옮겨서 실록을 보관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 표지판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 표지판
용굴암 터
용굴암 터
용굴 사진
용굴 사진

 

내장산에서 즐기는
보너스 타임

여기까지 걸었는데 아직 기운이 더 남았다면 용굴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 은적암 터가 있는 곳까지 가 봐도 좋습니다. 22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니 심사숙고하세요. 하지만 고생한 만큼 더 멋진 내장산의 봉우리와 능선을 만나게 될 테니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계단
계단
은적암 터
은적암 터

돌아오는 길 금선계곡에 흐르는 물을 동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이 물처럼 역사의 물줄기도 계속 흘러가겠지요? 산세가 험준해 실록을 피난시키기에는 최적지였지만, 등짐을 지고 걷기에는 녹록지 않았을 길, 역사를 지고 걸었던 그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역사는 기억되고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칠 즈음, 하늘도 파랗게 열리고 날씨가 쾌청해졌습니다. 우리는 내장사 입구 정혜루에서 향긋한 연잎 차를 마시고 군고구마도 먹으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내장사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혜루에 가시면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물론 부처님의 자비로 무료로 나눔 하는 차입니다.

내장사 전경
내장사 전경
정혜루
정혜루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선조들의 용기와 노고를 기리며 내장산 실록길을 한번 걸어보세요. 이제 곧 봄이 올 테니 나뭇잎이 연둣빛으로 물 들 때, <으랏차차 조선실록 수호대>동화를 읽고, 자녀와 함께 역사 기행을 떠나보는 건 어때요? 내장사로 가는 길 왕조교와 실록교를 건너보고, 탐방 안내소 직전 화장실 옆에 있는 ‘조선왕조실록 내장산 이안사적기’비도 찾아보세요.

왕조교
왕조교
실록교
실록교
이안사적기
이안사적기

“실록은 조선의 정신이며 자존심이다. 실록이 사라지면 조선의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게야. 역사가 없는 민족은 앞날도 기약할 수 없다. 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실록을 지킬 것이다.”
안의의 단호함에 석개는 마음이 흔들렸다.
- <으랏차차 조선실록 수호대> 에서 만난 문장

/글·사진=오교희(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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