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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기억을 줍다
[금요수필] 기억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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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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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김재희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배우의 성근 머리칼이었다. 배우의 목소리는 각각 다른 감정의 기복에 따라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살결을 채색했다. 박력 있는 목소리일 때는 땀방울을 밀어 올려서 자르르한 윤기를 내기도 하고 떨리는 음성일 때는 파르르한 핏줄이 돋는 듯 하기도 했다.

무대의 분위기를 달콤한 크림 같은 말이 아련하게 휘감아 돌 때는 미끄러질 듯 아슬아슬한 빛이 퍼진다. 그러다가 말을 다 뱉지 못하고 침묵으로 무대가 잠시 숨을 멈출 때는 그 살빛에서 감정이 울컥 배어 나왔다. 삶의 온갖 흔적들이 공연 내내 고스란히 내게 옮겨오면서 왠지 모를 깊은 울림이 마음 안으로 파고들었다.

성근 머리칼은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물론 유전적인 요소가 아니고 신체의 변화에서 생기는 자연적인 과정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 외에도 주름이나 몸놀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도 있지만 나는 유독 성근 머리카락의 모습에서 나이 들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가장 밀접한 것은 기억력 아닐까. 나이와 기억력은 평행선을 이루어 날이 갈수록 감퇴해 가는 기억력은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나 역시 이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기억력과 관계된 책이나 영화에 관심이 쏠린다.

오래전에 보았던 중국 영화 <5일의 마중>이 새삼 감동으로 떠오른다. 문화대혁명으로 감옥살이하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다. 20년이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러면서도 남편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돌아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기억을 온갖 정성으로 되돌려 보려하지만 모두 허사다.

아내는 ‘5일에는 돌아갈 것’이라는 남편의 편지만은 기억하고 매달 5일이면 역으로 마중을 간다. 그럴 때면 곁을 지켜주던 남편도 이웃집 아저씨인 양 동행을 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기다리는 남편인 줄을 모르고 매 달 외롭게 돌아서는 가슴 아픈 사연의 순애보다.

어느 간병사의 이야기도 있다. 우연히 치매 환자의 간병을 맡았는데 그 환자는 바로 첫사랑이었다. 비록 그동안 맺어지지는 못했지만 살면서 마음 한구석에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을 이루어 다복하고 평온한 삶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키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올곧은 여인이었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퍽 다행으로 여기며 오로지 환자와 간병인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은 연민으로 마음속 깊이 염원하고 예전의 건강한 모습이 되어 주길 빌고 또 빌었다.

위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비록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은근한 정이 어려 있는 아름다운 사연이다. 서로 통하지 못하는 정의 깊이를 어느 것으로 재어 볼 수 있을까. 물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으로 내려 보내는 두레박줄이 끝없이 풀리는 깊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줌의 물을 퍼 올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아갈 것이다.

무대 위의 배우를 보면서 또 다른 인물을 만난다. 주름살과 성근 머리칼이 말해주는, 실로 오랜만에 만난 눈은 잊힌 세월이었다. 긴 세월 동안 묻어 두었던 침묵에서 뚜욱 떨어진 물방울 하나. 배우 떠난 무대의 허공을 훑으며 누군가의 눈빛에서 사라진 기억을 찾아 줍는다.

 

*김재희 수필가는 전북 정읍 출생으로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성했으며 수필과 비평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 <꽃가지를 아우르며>, <하늘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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