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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가치
인문학의 가치
  • 기고
  • 승인 2020.02.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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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우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HK+ 지역인문학센터장
백진우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HK+ 지역인문학센터장

전국적으로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하듯 여는 수많은 인문학 강좌와 백화점마다 그럴듯한 이름을 내건 문화센터의 인문학 강좌들을 보면 인문학이 우리 곁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인문학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묻는다면 누구도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필자 역시 인문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이자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인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여전히 어렵다. ‘인문학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에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정답이 있다면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일에 쉽게 염증을 내기 때문이다.

가끔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고 학생들이 어떤 답변을 내놓는지 살필 때가 있다. 한번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답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핵심단어는 ‘나’, ‘인간’, ‘사람’, ‘다른 사람’, ‘삶’ 등이다. 이는 ‘나를 포함한 인간의 삶’이라는 말로 치환이 가능하다. 주목할 점은 학생들이 ‘문제와 정답’보다 ‘질문과 해답’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정답을 찾는 일에 골몰했던 학생들이지만, 인문학에는 남들이 정(定)해준 정답(正答)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우리의 삶에도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다. 더욱이 이런 문제는 생활 주변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국정의 거대 담론까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난제들에 정해진 답이 있을까? 어쩌면 뉴스를 보면서,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각자 툭툭 내뱉는 한 마디가 그 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답변일 것이다.

신종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이들은 위험 지역에서 온 이들을 자신이 사는 지역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대 시위를 하고, 또 어떤 이는 공생(共生)의 관점에서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환영의 메시지를 낸다. 이처럼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에 대한 가치판단 끝에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의 결론이 옳은 방향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해답이 옳은 방향일 필요가 있다. 방향만 옳다면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토론은 의미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최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화두를 상기하는 이들이 많다. 조직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개인이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연습이 돼 있어야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인문학의 본질을 고려한다면, 인문학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백진우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HK+ 지역인문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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