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0-03-29 20:33 (일)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3. 완주의 힘, 봉동생강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3. 완주의 힘, 봉동생강
  • 기고
  • 승인 2020.02.27 19:58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동생강
봉동생강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없다. 담을 삭히며 기를 내리고 토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습기를 없애고 딸꾹질을 하며 기운이 치미는 것과 숨이 차고 기침하는 것을 치료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기록된 생강의 효능이다. 공자도 자신의 몸을 위해 즐겼다고 전해지는 생강은 우리 선조 때부터 몸을 보하는 민간요법에 주로 쓰인 약재료이자 식재료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19’ 예방을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으로 완주 봉동의 명물인 ‘생강’에 관심이 간다.

완주 봉동은 우리나라 생강의 종가로 알려진 고장이다. 봉동에서는 생강을 여러해살이 생강풀인 새앙에서 변형된 말인 ‘시앙’으로도 부른다. 오래전부터 지역특산품으로 유명한 ‘봉상생강’의 생산지인 봉상이 1914년 우동과 통폐합되어 ‘봉동’이 되면서 ‘봉동생강’으로 불리고 있다. 봉동은 만경강 상류 봉실산 아래에 자리한 지역이다. 그 까닭에 겨울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산이 막아주고 햇볕까지 잘 들고 물이 풍부하면서도 물 빠짐이 좋아 생강이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생강에 관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기록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북쪽 변방에 전사한 장수와 병졸의 부모와 처자에게 생강 등을 하사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을 보아 11세기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이 중국 봉성현에서 가져온 생강을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군에 심었다가 재배에 실패하자, 봉(鳳)자가 들어간 ‘봉상(鳳翔)’에서 재배에 성공하면서 ‘봉동생강’의 기원이 됐다는 설도 있다. 당시 생강 관련 기록이 있던 유일한 고장이 지금의 완주를 포함한 ‘전주부’였음을 살펴보면 그럴싸한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 1414년(태종14년) 생강사건에 관한 기록과 '매일신보' 1938년 기사
'조선왕조실록' 1414년(태종14년) 생강사건에 관한 기록과 '매일신보' 1938년 기사

그 외에, 허균의 조선음식 소개서인 『도문대작』에 소개되었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삼례와 전주를 지나던 길에 생강을 선물 받은 내용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 등 여러 문헌과 일제강점기 시장조사 자료에 봉동 장기리 시장의 생강이 특산품으로 소개되었고 『매일신보』등 신문에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 봉동생강이 명성을 이어 온 것이 분명하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왕과 생강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는데 정조의 감기나 기침을 다스리는 약으로 쓰였고, 82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생강차를 자주 마셨고, 중종 때에는 왕이나 세자가 신하들에게 생강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그 중, 완주의 ‘삼례’란 지명을 있게 한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 방간(1364-1421년)과 관련이 있는 ‘생강탄핵’으로 화자 된 사건이 있다.

“방간이 보낸 생강을 받고도 임금에게 아뢰지 않는 심종을 탄핵하다”란 1414년(태종 14년)의 기록이다. 청원군 심종이 지난해 가을, 임금의 행렬을 따라 남쪽으로 갔을 때 완산에 유배 중이던 방간에게 지역의 특산물인 생강을 받고, 그 내용을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으니 그를 벌하라는 내용이다. 결국, 태조 이성계의 차녀인 경선공주의 남편이자 선왕의 사위이며 태종이 자신의 매제이기도 한 그를 귀한 생강을 몰래 혼자 차지한 죄로 처벌한 사건이다. 생강 때문인지 왕자의 난을 겪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 역모의 징조로 보고 방간과 친한 심종을 벌하며 형인 방간을 견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심종은 생강 선물을 받고 난 3년 뒤인 1416년에 지금의 파주인 교하로 유배를 가 유배 생활 끝에 지금의 황해도에서 병으로 죽는다.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던 방간은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방원에게 패한 뒤 전주 근교인 지금의 완주에 칩거할 때 연류된 것이었다. 생강 선물에 얽힌 이야기가 대신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태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풍파 속에 물러난 왕족에 관한 예의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가 사는 곳을 향하여 세 번 절을 하게 되면서 ‘삼례’란 지명을 남겼고, ‘봉상생강’은 유명세를 치렀다.

완주봉동생강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용국(1955년생)은 “봉동에 살면서 생강에 얽힌 숱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우리나라 생강 시배지가 봉동 낙평리라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그곳은 바짝 마르면 흰 모래밭처럼 보이다가 비가 내리면 거무튀튀하니 비옥하게 보이는 희안한 땅이어요. 만경강 수맥이 지나는 곳으로 물을 품은 땅이면서 물 빠짐도 좋아 생강 키우기에 좋고, 오래전부터 씨생강을 보관하는 저장굴이 동네에 내려오고 있어 생강이 잘 된 거라 하지요.”라 한다.
 

완주 봉동 온돌식 생강저장굴의 과학적인 전통농업시스템(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 사진제공=완주군
완주 봉동 온돌식 생강저장굴의 과학적인 전통농업시스템(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 사진제공=완주군

생강은 알싸한 향 때문인지 병충해가 적지만 재배와 보관이 까다로운 식물이다. 그렇다 보니 재배환경 못지않게 추운 겨울 생강 종자를 보관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봉동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전통농업인 온돌식 생강저장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생강농업보존 방식을 잘 계승하기 위해 주민과 전문가와 완주군청이 함께 힘쓴 결과 지난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로 지정받았다. 봉동의 ‘온돌식 생강굴’은 구들장 밑으로 ‘고래’라 불리는 고랑을 파 밑에 생강 저장굴을 만들고 고래에 바위를 깔아 아궁이의 열기로 고래 바윗돌을 데워서 생강 종자를 보관하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여 저장하는 과학적인 방식이다.

잘 보관한 씨생강을 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캐어 식재료로 쓰고 차나 술의 알싸한 맛과 깊은 향을 내기도 하며 몸을 보하는 약재료로 쓰이는 게 생강이다. 또한 강한 생강의 냄새가 산짐승이나 잡귀가 접근하지 못한다고 여긴 선조들이 밤길을 걸을 때 씹기도 한 것이 생강이었다. 몸에 좋은 생강을 많이 먹어서인지 유난히 씨름판 천하장사를 많이 배출한 곳이 봉동이다. 그 천하장사를 낳은 힘의 원천이 생강이라면 코로나 19와 한 판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에게 건네주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won 2020-02-28 15:14:09
요즘처럼 건강과 면역이 중요한 때에 유용한 정보네요. 완주 봉동 생강이 유명한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역사가 길고 과학적인 보관 방법까지 있었네요.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강상구 2020-02-28 12:25:29
'봉동'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봉동생강'의 효능 등을 자세히 설명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이 김장철에 게시됐더라면 더 좋을 뻔 했네요. 생강이 김치 만들 때 꼭 들어가기도 하지만 요즘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물리치는데 면역력 강화에도 좋고 감기 치료에도 좋다고 하지요..............

최순자 2020-02-28 08:43:35
코로나바이러스나 감기나 문제는 이기려면 면연력을 키워야겠어요~~~생강 많니 먹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