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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지금은 서로 격려하고 응원할 때
코로나19, 지금은 서로 격려하고 응원할 때
  • 기고
  • 승인 2020.03.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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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모든 게 텅 비었다. 3월 새 학기를 맞아 술렁거려야 할 학교도, 성당도 법당도, 공연장도 모두 텅 비었다. 음식점도, 상가도 헤싱헤싱하다. 거리엔 오가는 사람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것도 마스크를 쓴 채, 무슨 벌레 만난 것처럼 서로 거리를 둔다. 눈만 뜨면 매스컴에선 중계 방송하듯 확진, 자가격리, 감염, 폐쇄, 사망 등의 살벌한 용어를 토해낸다. 휴대폰에서도 ‘긴급 안내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과 한 달여 사이에 바꿔놓은 풍경이다.

개인의 일상이 위축되고 사회 전체가 마비된 듯하다. 실제로 낯선 이와의 악수도, 오랜 벗과의 식사도 두렵다. 점심식사 때 마주앉은 동료의 목소리가 커지면 비말(飛沫)이 튀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다. 문고리만 만져도 화장실로 향해 손을 씻는 습성이 몸에 배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설설 기게 만들고 있다. 슈퍼컴퓨터도, 인공지능(AI)도 아직은 속수무책이다. 코로나19가 중국을 넘어 여러 나라로 번지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팬데믹(pandemic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의 위험성이 고개를 든다.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도 80개국을 넘었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습격은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 동물에서 비롯된 인수공통전염병이다. 근대 들어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질병들이 모두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감염병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총균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에이즈도 아프리카 야생원숭이가 지니고 있던 바이러스가 진화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했다. 빌 게이츠도 이미 5년 전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재난은 핵무기도, 기후변화도 아닌 전염성이 강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고 경고한 바 있다. 10억 명에 달하는 인구를 한꺼번에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게 미생물(microbes)이라는 것이다. 빈번해진 국제교류와 도시 밀집화는 바이러스가 확산하는데 좋은 숙주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재난은 인간본성의 민낯을 드러낸다. 대다수가 침묵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일부는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하다. 마스크 사재기를 하는 나쁜 상인들이 대표적이다. 또 4·15 총선을 기화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좀비 같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역감정을 소환하는 등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댄다. 그런가 하면 선동과 욕설로 군중집회를 주도하는 수준 낮은 목사며 코로나19를 퍼뜨리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는 사교(邪敎) 집단 등은 종교의 존재이유를 묻게 한다. 일부 언론은 나라가 망해야 직성이 풀릴 듯 불안과 공포를 부추긴다.

반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도 많다. “1시간보다 더 잔다”며 한 달 보름 넘게 질병관리본부를 지키고 있는 공직자며 공황상태에 빠진 대구·경북에 한달음에 달려간 의료진은 우리 곁의 작은 영웅들이다. 또 건물 임대료나 월세를 깎아주는 이들이며 각종 물품을 아낌없이 내놓는 민초들도 우리의 희망이다.

바이러스의 습격은 앞으로 더 강력해지고 일상화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비난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치료약이 아닐까 싶다. 문득 밖에는 매화와 군자란의 꽃망울이 생명의 문을 열고 있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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