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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육육걸즈 박예나 대표 "고객과 함께 하는 100년 기업 만들고 싶어"
[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육육걸즈 박예나 대표 "고객과 함께 하는 100년 기업 만들고 싶어"
  • 김원용
  • 승인 2020.03.10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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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600억원 매출 올리는 20대 청년 사업가
“청년, 가슴 뛰는 일 있다면 도전하라” 권유
도내에 본사를 두고 연매출 600억원으로 성장한 온라인 쇼핑몰 (주)육육걸즈 박예나 대표가 100년간 이어질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세림 기자
도내에 본사를 두고 연매출 600억원으로 성장한 온라인 쇼핑몰 (주)육육걸즈 박예나 대표가 100년간 이어질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세림 기자

일자리가 없어 청년층이 지역을 등지고, 인구 감소로 지역의 활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자치단체마다 기업유치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러나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입지적으로 불리한 전북에 규모 있는 사업장을 차리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상장사와 코스닥 등록업체를 통틀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전북에 본사를 둔 번듯한 업체가 드문 실정에서 연간 600억원대 매출액을 올리는 기업이라면 의당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그것도 청년 창업으로 일군 성과라면 더욱 값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주)육육걸즈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이 회사의 대표는 20대 여성이다. 전주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고용인원이 100명이 넘는다. 대표는 지금까지 5억원에 가까운 기부천사이기도 하다. 일자리 때문에 고민할 나이에 되레 100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청년 CEO 박예나 대표(28)를 만나 `성공신화`를 들어봤다.

 

-회사 이름이 특이하다. 어떻게 명명됐나.

“옷 사이즈(66)와 소녀들(Girls)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중학교 3학년 때 개인 블로그로 `육육걸즈`(www.66girls.co.kr)를 개설했다. 보통의 여성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학생 때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구상하고, 옷 사이즈로 특화한 것 모두 특별하게 보인다.

“사춘기 여학생들은 누구나 꾸미는 걸 좋아한다. 중학교 시절 통통한 내 체형에 맞는 예쁜 옷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되는 66사이즈 옷이 애매했다. 그 시절 미니 홈피를 만들어 이런 옷들로 홈피를 꾸미는 게 재미있었다.”

 

-취미가 사업으로 연결됐다는 말인데, 학생 신분으로 그게 쉬운 일인가.

“어렸을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서울에 있는 예술고 진학을 희망했다. 집안 형편이 안 돼 인문계 고교(전북여고)에 진학했으나 공부에 맘을 붙이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재능을 살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하셨다.”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시작은 구제 옷을 싸게 사서 파는 일이었다. 수입과 상관없이 서울에 있는 재활용처리장에서 구제 옷을 구입하는 게 쓰레기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재미가 있었다. 하루 23시간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렇게 3년간 조금씩 기반을 넓혔으나 구제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져 보세 옷으로 눈을 돌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 남대문시장, 동대문 시장으로 발품을 팔았다.”

 

-온라인 쇼핑몰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개다. 치열한 경쟁 속에 단단한 쇼핑몰로 성장시킨 비결이라면.

“시장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늘 트렌드를 살핀다. 새로운 상품을 보여주고, 빠른 배송 물류시스템을 갖춘 것이 강점이다. 옷을 좋아하다보니까 한 스타일 치우치지 않았다. 호기심 많아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어떤 옷이 잘 팔릴까 집요하게 고민한다.”

 

-일에 묻혀 산다고 들었다.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관리자로서 여유도 누릴 만한 데.

“온라인 쇼핑몰은 1주일만 관리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금세 알아차린다. 대표라고 해서, 사업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12시 퇴근이다. 연휴나 명절도 없다. 매일 웹디자인이 잘 됐는지, 상품 업데이트가 제대로 됐는지 꼼꼼히 살핀다.”

 

-아무래도 지역에 본사를 두는 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서울로 본사를 옮길 것을 고민했다. 서울에 물류창고를 둘 경우 현재 물류비용으로 드는 연간 2억원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나를 있게 한 전주를 벗어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주에서 1등을 해보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서울에 있었다면 그저 한 온라인 쇼핑몰이었겠으나 지역에 있기 때문에 더 주목 받지 않는가.”

 

-사업 규모가 늘면서 매각에 대한 유혹은 없었나.

“사업체 매입과 지분 투자를 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전혀 고려치 않는다. 돈이 아니라 일이 좋아서 시작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사업 규모가 커진 만큼 전문 경영인 체제를 고려해야지 않을지.

“규모가 커지면서 고민이 되는 대목이기는 하다. 하지만 의류 쇼핑몰이라는 게 배추나 토마토를 파는 게 아니다. 여성 의류사업은 굉장히 감성적인 분야다. 숫자와 데이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경영에서 중시하는 게 있다면.

“회사는 고객과 같이 나이를 먹는다. 길게 가려면 고객만족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본다. 현재 80만명 회원의 85%가 재구매 고객이다. 회사의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향후 예상되는 어려움은.

“온라인 쇼핑몰은 경쟁의 연속이다. 소비자의 패턴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마케팅 방식도 달라진다. SNS도 빠르게 진화한다. 그런 변화와 유행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상품을 양산하는 게 관건이다.”

 

-대학시절 이미 스타 창업가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청년창업의 모델이 되고 있는데, 지역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팁은.

“나는 무작정 시작했다. 처음부터 돈을 보고 한 일이 아니다. 가슴 뛰는 일이 있다면 소자본이라도 좋다. 무한정 고민할게 아니라 일단 도전하라.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해서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100년 이어질 기업을 만들고 싶다. 수 안 쓰고, 꾀 안 부리고, 욕심 안 부리겠다. 서울과 수원에 이어 부산 3호점을 내고 싶고, 전국에서 입어보는 옷, 좋은 쇼핑몰 만들고 싶다.”
 

박예나 대표
박예나 대표

● [육육걸즈는 어떤 회사] 4만원에서 600억원으로 성장

육육걸즈 본사는 전주국립박물관에서 정읍으로 가는 도로인 전주시 완산구 호동길에 자리하고 있다. 물류창고를 옆에 둔 본사 건물에 116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등록한 상품이 1만8000개다(옵션까지 포함). 그 중 85%가 자체 생산품이다.

박예나 대표는 기성 제품을 단순히 중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화장품을 제외하고 의류, 액세서리, 주얼리, 신발, 가방, 헤어밴드 등 패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금세 유행이 바뀐다. 패션은 속도전이다. 고객 눈높이에 맞춰 신속히 제품을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시장과 다른 제품, 회사의 모토인 66사이즈를 예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자체 제품 비중을 계속 높인 이유다. 1주일에 100가지를 만든단다. ODM 방식이지만, 이 과정에 대표가 적극 개입한다. 모든 의류제품을 직접 입어보고 수정해서 생산토록 하고 있다. 현재 100여개 협력업체가 있다.

지난해 660억원 매출액을 올렸다. 집에서 준 용돈 10만원으로 구제(舊製) 니트 1개와 신발 1켤레를 구매해 판매하는 것으로 출발, 새 옷처럼 보이게 깨끗이 수선하고 다림질 등을 해가며 아등바등 나름 열심히 사업(?)을 벌여 처음 한 달 내내 번 돈 4만원이었던 시절은 먼 이야기다. 중진공의 도움을 받아 일본과 중국, 대만, 미국으로 3억원어치 수출도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시장으로도 넓혔다. 서울 상수점에 이어 최근 수원점을 오픈했다. 주변에서 투자 대비 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만류했으나, 직접 입어볼 때 좋은 상품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박 대표의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 누구였을까. 횟집을 하던 부모님을 보면서 고객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횟집을 찾아주는 손님들을 정말 고맙게 생각했다. 온라인 판매지만 처음 3년간 고객들에게 손 편지로 고마움을 전했다. 하루 200장의 손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돈 버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려주고, 고객의 고마움을 알게 한 부모님이 보이지 않은 가장 큰 멘토였던 셈이다.


/김원용 사회·교육·문화·체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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