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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4. 천리물길 금강, 뜬봉샘에서 째보선창까지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4. 천리물길 금강, 뜬봉샘에서 째보선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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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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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발원지 뜬봉샘과 금강하구 째보선창.
금강발원지 뜬봉샘과 금강하구 째보선창.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인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서두 한 구절이다. 금강의 맑은 물이 탁류로 변하는 과정을 빗대어 일제의 압박을 받았던 시대를 표현한 역작이다. 탁류로 표현된 군산 금강하구 째보선창에 합류된 그 물을 따라 천리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맑은 샘이 있다. 바로 비단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운 강이라 불리는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이다.

뜬봉샘은 전라북도 장수군 수분리의 산자락에서 금강의 첫물을 내는 작은 샘이다. 뜬봉샘이 있는 ‘장수(長水)는 긴 물길’이라는 지명으로 물과 깊은 연이 있다. 장수는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고장으로, 물과 얽힌 이름이 유독 많은 곳이다.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에 둘러싸인 장수에는 산이 많은데, 그중 팔공산의 산줄기에서 나와 신이 춤을 추었다 하여 이름이 지어진 신무산(神舞山)은 수분마을을 품은 산이다.

신무산에는 신당이 있던 곳으로 당재라고도 불리는 수분령이 있는데 ‘수분(水分)’은 물을 나눈다는 것을 의미하며 북쪽의 물은 금강으로, 남쪽의 물은 섬진강으로 물을 나누어 보내는 기점을 뜻하는 말이다. 그 이름을 딴 수분마을은 오래전부터 물뿌리의 사투리인 ‘물뿌랭이’ 마을로 불렸다 하니 물의 근원이라는 것을 예로부터 증명해온 셈이다.
 

장수 수분리 뜬봉샘과 수분공소(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89호).
장수 수분리 뜬봉샘과 수분공소(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89호).

수분리의 뜬봉샘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성계가 신무산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를 올리자, 백일 되는 날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타고 봉황새가 올라가고 하늘에서 “새 나라를 열라”는 천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성계는 산신의 계시를 들은 단 옆에 하늘의 소리를 귀로 들었다는 의미로 ‘상이암(上耳庵)’이란 작은 암자를 짓고 봉황이 뜬 곳의 샘물로 제수를 써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한다. 그 영험한 장소는 ‘봉황이 떠오른 샘’이라 하여 뜬봉샘이란 이름이 생겼지만, 상이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지금은 전설로만 남았다.

뜬봉을 마을에서는 ‘뜸봉’이라고도 불렀는데 마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과 무탈을 기원하며 신무산에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란 것에서 유래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신무산에 ‘장군대좌혈’의 명당이 있어 역적이 날까 두려워 그 자리에 숯불을 놓아 그 기운을 다스려 뜸봉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 설에 이어 과한 땅의 기운을 물의 성질을 지닌 뜸봉샘이 자연스레 다독거리게 되니 땅의 합에 더없이 좋은 것이란 말도 전해진다. 그 뜬봉샘 인근에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은신했던 장소로, 피난을 와 평화와 쉼을 얻은 신자들에게 신앙의 중심지가 된 ‘수분공소(水分公所)’가 자리하여 수분마을은 천주교 마을이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수분에서 시작된 금강은 우리나라에서 낙동강과 한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으로 여러 문헌과 고지도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금강의 근원이 장수산의 수분치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흘러 용암에 이르러서 송탄이 되고 옥천에 이르러 강경을 거쳐 옥구를 지나 용당진이 된다”고 기록이 되어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상류에서부터 적등강, 호강, 차탄강, 화인진강, 말흘탄강, 형각진강, 웅진강, 백마강, 고성진강으로 각 지역을 지나는 금강의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다.
 

'임하필기'의 금강발원에 관한 내용과 장수지형(동여도, 대동여지도).
'임하필기'의 금강발원에 관한 내용과 장수지형(동여도, 대동여지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여러 고지도와 일제강점기의 지도에서는 장수 일대의 산맥과 수계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 <동여도>에는 장수의 수분치 옆에 금강지원이 표기되어 있다. 일설에는 금강 발원지의 위치가 지금의 뜬봉샘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도 하나, 뜬봉샘은 금강의 첫물을 내어 흐르다 강태등을 지나며 금강의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을 이루고 ‘수분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어 진안의 용담으로 흘러가 무주를 지나 금산에 이르러 붉은 바위가 많이 있어 ‘적벽강’이라 불리며 강의 모습을 갖는다. 이어 영동, 옥천, 대청호로 흘러 대전과 공주에 이르러 금이 곰을 부르는 소리와 비슷하여 생겨난 ‘웅진강’으로 불리다 부여에서 ‘백마강’이 되어 논산과 익산 ‘곰개나루’를 지나 서천과 군산 사이로 흘러 ‘째보선창’에 이르러 천리 물길을 다하고 바다와 만난다.

금강하구는 『탁류』에서 초봉이의 아버지 정주사가 서천 땅을 처분하고 똑딱선을 타고 군산으로 건너와 미두장에서 돈을 탕진한 뒤 자살을 기도한 곳이기도 하다. 채만식은 소설의 구절을 빌어 “돈을 잃은 미두장이가 강물에다가 눈물이나 몇 방울 떨어뜨리며 울기들은 잘한다 하며, 금강은 백제가 망하는 날부터 숙명적으로 눈물을 받아먹을 팔자”라 했다.

하지만, 금강의 첫물을 낸 뜬봉샘은 이성계가 꿈을 이룬 곳이고, 금강하구는 최무선 장군이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이용한 진포대첩으로 대승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금강은 백제의 문화를 꽃피운 강임이 틀림없다.

작은 샘에서 솟아 강물로 흘러 바다로 나아가는 그 물길의 시작과 끝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한다. 세상의 어려움이 어떠하든 자연은 흔들리지 않고 뜬봉샘은 봄물을 한껏 쏟아내 겨우내 움츠렸던 땅을 적시고 봄을 맞이한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요즘 어수선한 날이 지나면 뜬봉샘과 금강하구의 째보선창을 찾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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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2020-03-15 22:22:41
항상 지역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게 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최순자 2020-03-14 12:14:28
뜬봉샘에 가서 좋은 기운받고 빨리 코로나 물러가라 기도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