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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 -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 -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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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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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에 사랑하라, 어떤 식으로?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소설 <작은 것들의 신>
오은숙 작가, 작은 것들의 신
오은숙 작가, 작은 것들의 신

“작가는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저주받은 운명이다.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어야 하고,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빠진 것들을 새롭게 이야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사랑과 탐욕, 정치와 지배, 권력과 권력의 결여, 이런 것들에 대해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며칠 전,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9월이여 오라>에 실렸다는 이 문구 때문이었다. 작가는 아픈 눈을 뜬 채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에 경외를 표하며 <작은 것들의 신>을 펼쳤다.

책은 쌍둥이 남매인 에스타와 라헬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성인이 된 라헬이 에스타를 찾아 고향 아예메넴으로 돌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치밀한 구성으로 엮어 놓은 가족사는 소피몰이라는 어린 양의 희생과 함께 아무와 벨루타가 상징적 의미에서 (문이당97p.)<빗자루로 자기네들의 발자국을 쓸어 지우면서 뒷걸음질로 기어가곤 했던> 불가촉천민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어진다. 낯선 이름과 많은 인물로 초반에는 읽었던 부분을 되짚기도 했지만 감각적인 문장과 구체적인 심리묘사에 압도되어 읽었다. 그러니 읽다가 인물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라도 끝까지 읽기를 바란다. 그러면 아무가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는 엄마를 보고 쌍둥이에게 (70p.)<마마치가 우는 이유는 파파치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막내 코차마가 (63p.)<아무를 괘씸하게 여겼>으며 왜 그랬는지도.

하나같이 개성강한 인물들은 자신을 (32p.)<라헬의 타락은 예의바르고 독자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 그 아이는 어떻게 해야 여자다워지는지를 통 모른다는 것이었다.>는 식으로 드러낸다. 인도, 아예메넴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해야 인간다워지는지 통 모른다는 식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예의바르고 독자적인 형태로. 예의라는 것이 제도나 관습 안에서 폭력이 될 수 있도록. 늙은 공산당원인 필라이 동지가 (29.)<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절대로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 세상을 헤쳐나갔다.>와 같이 살아남으려고. 그것은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우리의 지난 세대를 보는 듯하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한다. (414p.)<헤어질 때마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작은 약속밖에 받아내지 않았다. ‘내일?’‘내일.’>하면서 살아있는 기쁨을 누린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장소나 관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들과 땅과 공간에 관한 것이며, 어떤 특정한 사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라고. 그 말에 공감하며 의견 하나를 보탠다. <작은 것들의 신>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할 때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벽들에 관한.

작가는 부정하였지만 평소 우리를 둘러싼 관습이나 제도에 고민이 많았던 사람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 오은숙 작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현재 요양 병원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을 오가며 창작 수업을 들었다. 앞으로도 일하며 글쓰는 단순한 삶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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