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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해.봄
경청.해.봄
  • 기고
  • 승인 2020.03.24 20: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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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퇴근하며 들어오는 엄마에게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서 질문으로 반겨준다. “엄마! 경청의 정의를 알아요?” 어린이집을 다니며 두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성품을 공부하는데 이번 달 배운 성품 노래를 꽤나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경청의 정의를 불러봅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잘~ 집중하여 들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해~ 주는 것!”

흔히들 ‘경청(傾聽)’을 말할 때 ‘잘 듣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만 ‘귀를 기울여 듣기’를 넘어 듣는 것으로 상대방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단계에 이르기, 이것이 경청의 핵심이다.

사실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사람들은 어렵다 말한다. 스토리텔링이나 발표 기술(Presentation Skill)에 큰 비중을 두며 말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라고, 오히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태 낙오자처럼 여긴다. 들리긴 하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듣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디에서도 잘 듣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이 지은 <자존감수업>이라는 책에서 부부 생활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남편들은 대부분 아내의 무시 속에서 자존감이 저하되어 있고,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지 못 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상담 치료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훈련을 하며 듣기 시작할 때, 굳었던 마음은 녹는다. 그러고 보면 잘 듣는 것, 들으며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행위만으로도 꼬인 매듭은 풀리고, 긴장의 관계는 완화된다. 경청이 가져오는 치유의 능력이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가 끔찍한 테러를 당한 뒤 아픔과 혼란 속에 신음할 때, 한 비영리 단체는 뉴욕 도심에서 ‘Free Prayer‘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생명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두려워하던 시민들에게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하며 위로하는 운동이었다.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많은 이들이 곳곳에 설치된 야외 상담소를 찾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다. 일본에서도 2011년 쓰나미로 일어난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 속에서 시작된 것이 ‘경청상담소’였다. 그곳에서는 상담자가 30분씩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현실적인 처방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100여 개의 상담소가 생기며 사람들을 치유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경청의 위로를 나누고자 2015년 여름 ‘당신을 위해 기도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길가 상담텐트에서 오고가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 2015년 메르스의 공포가 스치고 간 자리에 세워진 상담텐트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대화가 필요했다. 잠시의 상담 시간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를 떠올린다. 경청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든 소통과 대화의 첫 출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져 외로움에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면 ‘해’처럼 따뜻하게, ‘봄’처럼 싱그럽게 ‘경청해봄’은 어떨까. 영화 ‘심야식당’ 마스터의 요리가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그가 먼저 들어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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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2020-03-25 21:42:00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며 코로나로 지친 우리에게 이 봄에 대한 기대감이 가져지게 하네요.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해처럼 따뜻하고 봄처럼 싱그런 시간들 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