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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5. 세상의 이치를 담은, 고창 윤도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5. 세상의 이치를 담은, 고창 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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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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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평철, 선추, 면경철과 김종대 윤도장(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평철, 선추, 면경철과 김종대 윤도장(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절을 지나다 보니 우리네 삶의 올곧은 좌표를 안내받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다. 까마득한 시절 선조들은 길을 찾고자 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달과 별 그리고 해의 위치를 살펴 낯선 곳이나 어둠 속에서 방향을 찾았다. 이후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살피다 이제는 인공위성을 활용한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첨단기술의 네비게이션도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하는 오류를 범하는데, 고창에는 조선시대부터 그 방향이 틀림없다 인정받은 전통 나침반인 ‘윤도(輪圖)’가 전승되고 있다.

나침반은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되어 이후 아랍 상인들에 의해 널리 전파됐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54년에 일식을 관찰했고, 별과 해의 모습 등 하늘을 자세히 살피며 점을 쳤고, 유성이 떨어지거나 해가 두 개 나타났을 때 죄수를 사면한 것 등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부터 『주역』과 천문학이 발달해 백제에 천문학을 담당하는 일관부(日官部)와 신라의 천문박사(天文博士) 등이 있던 것으로 보아, 천문학의 중요한 도구인 나침반은 삼국시대부터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 때는 풍수사상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고려에 이르러서는 해와 달을 비롯한 별들을 관찰해 천체에 관한 지도를 만들고 별자리의 변화를 계산해 농사철을 확인할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을 담당하던 관상감에서 윤도를 제작했으며 관련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여러 문헌에 남아있다. 1600년(선조 33)에는 명나라의 이문통이 ‘나경’을 보여 주었는데, “윤도와 비슷하나 더 자세하며 크기도 소반만큼 크고 해그림자를 재는 것도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를 보아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있던 윤도가 중국의 나경과 같은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파악된다.
 

윤도 제작 모습과 위로부터 자철석, 작업대, 연장.
윤도 제작 모습과 위로부터 자철석, 작업대, 연장.

윤도는 지침을 활용해 방위를 알아보는 것이지만, 동서남북뿐만 아니라 십이지와 팔괘로 방향을 표시하며 우주의 순리와 법칙,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이 오롯이 담긴 ‘세상의 질서를 새겨놓은 나침판’이다. 그렇다 보니 윤도는 지관이 묘터인 음택과 집터인 양택을 알아보는 풍수용으로 주로 쓰였고, 간략한 형태로 만들어진 윤도는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기 위해서도 쓰이며 지남철, 지남판, 나경, 패철로도 불렸다.

‘패철(佩鐵)’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하여 불린 이름으로, 부채에 휴대용 해시계 겸 나침판을 장식용으로 단 ‘선추’와 거울에 단 ‘면경철’과 거북이 등에 윤도를 박은 ‘거북 패철’까지 다양했다. 그 중, 조선시대 흥덕현에 속한 고창에서 만든 윤도를 특별히 ‘흥덕 패철’이라고 칭했다. 이를 보아 윤도는 천문학자나 풍수를 보는 지관만이 아니라 휴대용 생활과학 도구로 주로 사대부를 위시한 일반인들도 사용했으며, 명품의 대명사가 된 흥덕 패철은 그 방향이 정확하고 견고해 전통 나침반 중 으뜸이었다.

특히 고창 낙산마을에서 제작된 윤도의 정교함을 알아보는 방법이 남다른데, 예로부터 낙산마을 뒷산인 제성산에 있는 고인돌이 그 정확함을 증명해주었다. 거북이를 닮아 마을에서 거북바위라 불리는 고인돌에는 작은 구멍들이 파여 있어 완성된 윤도의 지침을 남북에 맞추고, 실을 동서로 되어있는 거북바위 등에 맞추면 지침과 실이 직각을 이루게 되어 윤도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거북바위의 신비한 기운이 서려서인지 낙산마을은 오래전부터 정확한 윤도를 만드는 고장으로 유명했다.

윤도를 만드는 전문 기술자를 윤도장이라 부르는데,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김종대(1934년생)가 낙산마을에서 그 맥을 잇고 있다. 그가 윤도를 전승하게 된 것은, 그의 조부인 김권삼이 ‘한운장’이라고 알려진 한씨에게서 기능을 물려받으면서부터이다. 낙산마을의 윤도장 계보는 전씨에서 한씨, 서씨, 한(한운장)씨에서 김권삼(현 보유자의 조부)의 아들 김정의에게 이어지다 아들 대신 손재주가 뛰어난 조카 김종대에게 전승되었다.
 

고창 제성산 거북바위와 평철 거북윤도.
고창 제성산 거북바위와 평철 거북윤도.

윤도장 김종대의 장남으로 현재 전수교육조교인 김희수(1962년생)는 “윤도를 만드는 중요한 물건인 자철석, 윤도 판본, 작업대, 50여 개의 연장이 한 세트로 350여 년 동안 가보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 중, 원래 두 개였지만 증조할아버지 때 아쉽게 하나를 잃어버린 ‘자철석(磁鐵石)’이 가장 중요한 보물이지요. 자철석은 자성을 띠는 자연석으로 우주에서 온 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철석은 윤도의 지침을 만드는 것으로 철심을 자철석에 붙여놓으면 자성이 철심에 그대로 옮겨져 지침이 되게 하는 특별한 돌입니다. 자력을 입힌 지침을 결이 고르고 단단한 대추나무에 꽂아 세상사를 새겨 윤도를 만드니 ‘우주의 이치를 새긴다’라는 말이 나온 갑소.”라 했다.

김종대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윤도 판본은 1848년(헌종14) 관상감에서 만든 윤도 판본으로 정간과 분금을 하고 각자를 하는 데 기본 자료가 된다. 대를 이어온 윤도장들의 지극한 손길과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 작업대 위에서 우주의 질서를 새긴 셈이다. 어릴 적 보았던 할아버지 부채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선추도 어쩌면 이 세상길에서 헤매지 않고 싶었던 어르신의 바람이었을 것 같다.

봄꽃이 아름다운 계절, 온갖 불안을 안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춘삼월 꽃놀이의 유혹을 떨치고 잘 견뎌내어 좋은 날이 오면 고창으로 길을 나서야겠다. 선운사의 춘백이 그때까지 남아있으면 서글프게 떨어지는 꽃송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낙산마을을 찾아 윤도장전수관도 둘러보고, 선사시대의 신비가 서린 거북바위에 변함없이 가리키는 윤도의 올곧은 방향으로 삶의 좌표를 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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