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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21) 임을 노래한 시인 최민순 신부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21) 임을 노래한 시인 최민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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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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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임’이신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한 구도자
무엇보다도 앞서는 ‘임’의 사랑을 노래한 시인
영성과 문학으로 참된 하느님과 만남의 길을 가르쳐준 사표師表
언어의 서정성과 상징적 시어를 통해 초월적인 사랑을 표상
최민순 신부
최민순 신부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론』

최민순(崔玟順, 1912~1975)은 신부이고, 세례명은 요한이며, 문인이다. 진안에서 출생하였다. 신심 깊은 부모님과 진안 어은동 본당 신부님의 허락으로 1923년 대구 성유스티노신학원 라틴어과에 입학했다. 이후 사제 수업을 마친 후 193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서품 후 수류 본당 주임으로 성무를 수행했으며, 전북 정읍, 임실, 남원본당 등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하였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전주 본당 내 학교가 해성심상학교로 개편 창설되면서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최 신부는 일제 탄압에 맞서 강론 등을 통해 거부 저항함으로써 구속되기도 했다.

최민순 신부 악보
최민순 신부 악보

그 후 1945년 최 신부는 대구 성유스티노신학원 학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그해 일제에 의해 사퇴되어 경성천주공교신학교(현 가톨릭 대학) 교수로 전임되었다. 1951년 대구대교구 출판부장, 『대구매일신문』, 『천주교회보』의 사장으로 임명되었고, 『천주교회보』의 명칭을 『가톨릭시보』로 변경 후 신문 사설에 글과 시를 실었다. 이듬해 성신대학 교수로 전임되어 후진 양성과 시, 수필, 번역 작품을 발표했다. 1963년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번역으로 제2회 한국 펜클럽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최민순 신부 강의 모습(1956년)
최민순 신부 강의 모습(1956년)

1960년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 유학하여 신비(영성)신학과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1962년에 귀국하였다. 1962년 성가수녀회 지도신부로 지냈고, 1963년에는 소명여자중고등학교장으로 재임되었다. 1965년 가톨릭 공용어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주의 기도, 대영광송 등의 기도문을 작성했다. 196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가톨릭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했다. 1968년 구약성서의 시편을 완역했고, 1975년 지병으로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서울 혜화동 가톨릭 신학대학 교내에 세워진 최민순 신부의 시비가 있는데 비문은 아래와 같고 그의 영성이 잘 나타나 있다.

최민순 시비
최민순 시비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은/ 첩첩 산중에/ 값 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만 내 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서 숨어서 피고 싶어라” (「두메꽃」, 전문)

시집 님, 시집 밤, 번역본
시집 님, 시집 밤, 번역본

저서로는 수필집 『생명의 곡』(1954)과 시집 『님』(1955), 『밤』(1963), 그리고 유고집 『영원에의 길』(1977)이 있다. 그의 유고집에 의하면 “최 신부는 신학생 시절부터 이미 문재文才에 뛰어났으며, 사색을 즐겨했고,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프랑소아 모리악의 소설론』(1936)이 있으며, 수류 본당 재임시절에 쓴 수필 「양 떼를 찾아」(1936)와 단편소설 「효종」, 「헌 양말」 등이 있다.

1960년에서 1975년까지 저술활동은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최 신부의 글은 가르멜 영성에 기초해,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걸으면서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을 추구하고 찬미 드리는 것으로 귀착된다. 이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진정한 길을 걸으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인생살이의 서러움을 뼛속까지 체험한 형제로서의 간절한 부름이요, 성인들에 대한 영구와 기도 및 수덕생활로 보낸 지혜 가득한 학자요 선생으로서의 손짓이며,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징표를 발견한 예언자로서의 실존이며, 봉헌과 희생의 제사를 지내는 사제로서의 자기 희생이요, 자신의 피로 맡겨진 양 떼를 키우는 사목”이었다.

또한 번역서로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론』, 『완덕의 길』, 『예수의 데레사』, 『성경의 시편』, 『영혼의 성』, 『가르멜의 산길』, 『십자가의 요한』, 『어둔 밤』 등이 있다.

최 신부는 신학교에서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스페인에서 신비신학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 깊이를 더해갔다. 그의 영성적 삶에 영향을 끼친 성인은 성 아우구스티노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이 있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론』은 “하느님을 모르고 외로운 ‘나’가 되었던 사람들이나, 알고도 모르는 척 나 하나로 있고 싶어서 스스로 외로운 ‘나’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나’의 모습과 가치”를 계시해 주었다. 이를 번역한 최 신부는 “현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안한 정신, 진리에 목마른 지성과 죄 많은 영혼은 여기서 평화와 신앙의 빛과 은총을 얻을 것”이라는 글을 독자에게 남겼다.

또한 아빌라 데레사의 『영혼의 성』과 『완덕의 길』에서 성녀의 영성에 대한 가르침을 이해하게 된다. 영성의 세 단계인 님의 영원안에서의 현존, 영혼의 점진적 심화, 하느님과의 합일을 통해 이해와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아인식을 통해 영혼의 목마름을 극복하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멜의 산길』과 『어둔 밤』은 밝고 희망찬 인생이 이어지길 바라고 행운만이 있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둔 밤’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은 끊음과 씻음을 통해 스스로 어둔 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태초에 누리던 놀라운 행복으로 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에 최 신부는 “다른 어느 사람의 영성보다 피부로 느낄 수 있고, 또한 어떤 의미에서 현대를 건질 수 있는 구원의 원리를 지닌 영성”이라 자각했다.

최 신부는 특별강론이나 피정지도를 통하여 사제나 평신도들에게 영성을 심어준 영성신학자로서, 문인으로서 존경을 받았다. 박일 신부의 『최민순 신부의 생애와 하느님의 이해』 에 따르면 “최민순 신부가 한국 교회에 남긴 의미는 그 깊이와 폭에 있어서 측량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특히 영성과 문학에 있어서 그의 위상은 참으로 선구자적이고 우뚝해, 차라리 고독하게 느껴질 정도다.”라고 조명했다.

전라북도문학관 패널
전라북도문학관 패널

“검은 喪服에 청춘을 묻고/ 오로지 님을 숨쉬며 살던 生物// (…) 더 큰 괴임과 섬김이 소원이었기/ 어느 空間에 갇히일 몸이 아니었다/ 죽기 아니면 견디옵기를.”(「제물」)로써 살았다. “보지 않고 믿음이 복됨이라면/ 허전한 가슴 안고 이냥 살으려노니/ 그리움도 내일을 몸가지는 한낱 기쁨/ 고독이 쥐어짜는 방울 방울/ 핏 방울에 어두움이 물들고/ 까마득히 새벽은 멀리 있어도/ 나는 밤을 새우렵니다/ 님 하나 믿으며, 믿으며/ 젯세마니의 밤을 세우렵니다/”(「젯세마니의 밤」)라며 고뇌도 했다. 그리하여 “지복의 하늘나라 성삼위聖三位의 품속에서 그립던 천사들이 우리 금혼의 곡을 노래하는 날”까지 구도자의 길을 추구했다.

최 신부는 “님의 노래 머금고/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면/ 태양은 눈부신 키쓰로 나를 꽃피웁니다”의 한 송이 채송화처럼, 혹은 “구태여 양지쪽 동산을/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 나는 님이 심어주신 좁다란 땅에서/ 다함 없는 봄을 맞이하”는 엉겅퀴가 되어 평생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다. 따라서 님을 향한 구원 여정은 “항시 저 푸른 하늘 별들과 다못 살고파/ 겨우내 눈 비 맞으며 이렇듯 서 있노라”(「겨울나무」)처럼 참자유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깊고 캄캄한 ‘어둔 밤’을 “시라쿠사의 貞女처럼/ 두 눈알을 쟁반에 받쳐들고/ 캄캄한 심연/ 두 안공처럼/ 해를 비추시는 나의 님을/ 다함 없는 빛을”바라며 살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골고타 봉우리에 밀씨 한 톨/ 부활의 씨앗”을 심으면서 “당신 등에 곱다시 업혀/ 구름 속 헤치며 창공을 가”고자 했던 구도자였다.

그는 신앙인이자 사제이며, 영성가이다. 그리고 ‘임’을 노래한 시인으로서 참된 하느님과 만남의 길을 가르쳐준 사표師表이다. “님은 나의 길, 나의 진리, 나의 생명, 영원한 카나안을 밝히는 빛”임을 인식하며 구원 여정을 향하여 나아갔다. 오직 사랑하는 임과의 일치를 위하여 어둔 밤을 걷고 있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최민순 신부는 영적 등불이 되고 있다. 가시 아래 피 번지신 당신의 거룩한 얼굴을 밝으신 태양 삼아 지복직관至福直觀했던 최민순 신부님에 관한 더 많은 연구가 이어졌으면 한다.

/김명자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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