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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최일남 소설집 ‘최일남 단편집’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최일남 소설집 ‘최일남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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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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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 해결해야 할 과제와 마주쳤다면
최일남 소설가, 소설집 <최일남 단편집>

소설을 읽는 순간, 마치 겪고 있는 일인 양 영화처럼 그려지는 때가 있다. 작가의 단편소설 <흐르는 북>을 펼친 순간이 그랬다.

“일당을 주고 불러온 요리 전문의 파출부와 함께 오렌지빛 고무장갑을 낀 채 잰걸음으로 주방 안을 헤엄쳐 다니던 며느리는, 현관 앞에서 구두를 찾고 있는 민 노인 쪽을 향해 빠르지도 처지지도 않게 말했다. 비스듬히 몸만 돌렸을 뿐, 한눈팔다간 썰고 있는 전복의 두께가 들쭉날쭉하게 될까봐, 시선을 도마 위에 못질해두고 입만 달싹거린 셈이었다.”(‘흐르는 북’ 中)

첫 문단이 시작되고 독자는 자연스레 민 노인의 오감을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감각과 더불어 그가 느끼는 감정마저 동화돼 소설에 몰입하고 만다.

첫 문단과 앞뒤로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독자는 곧장 민 노인과 함께 서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익숙한 긴장을 공유하는 것이다.

작가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집필활동을 이어왔다. 그중 <최일남 단편집>(지식을만드는지식·2018)은 단절의 극복을 고민한 작가의 소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소설집의 세 번째 단편 ‘흐르는 북’은 그런 작가의 고민을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 민 노인은 아들 내외와 살얼음판을 걷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한 세대를 건넌 손자 성규와 북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민 노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 때문에 부자가 첨예한 갈등을 유지하지만, 손자 성규는 민 노인에게 대학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탈춤 무대에 함께 서자고 제안한다. 북을 치느라 온 가족을 내팽개친 아버지를 미워하는 아들은 결국 이 문제로 폭발한다. 삼대에 걸친 복잡한 갈등 관계가 이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민 노인과 손자의 공연도 마음 편히 볼 수 없게 된다.

“그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공연 전에 마신 술기운도 가세하여, 탈바가지들의 손끝과 발목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북소리는 턱 턱 꽂혔다. 그새 입에서는 얼씨구! 소리도 적시에 흘러나왔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가락과 소리와 그것을 전체적으로 휩싸는 달착지근한 장단에 자신을 내맡기고만 있었다.”(‘흐르는 북’ 中)

북이 턱 턱 꽂히는 소리와 함께 절정에 치닫는 소설은 독자에게도 자꾸만 마른 침만 삼키게 한다. 흥겨운 무대의 진행과는 별개로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민 노인과 아들의 갈등을 여전히 아들과 손자가 반복하는 동시에 한 세대를 건넌 화합이 진행된다.

그밖에 함께 담긴 소설들 역시 단절의 극복을 담고 있다.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농촌에 대한 허영 가득한 향수를 담은 ‘서울 사람들’, 언어를 통해 남한과 북한이 갈등하고 대화하는 이야기를 담은 ‘꿈길과 말길’, 기자의 시선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서술되는 ‘타령 다섯 마당’까지 작가가 갈등에 대해 던지고자 하는 시선과 말을 꼼꼼히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갈등이 없이 진행되는 사회나 삶은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세상 속에서 단번에 해결되는 문제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삶 안에서 해결하고 싶은, 해결해야 하는 과제와 마주친 사람이라면 최일남의 소설을 권한다. 당신이 이겨내야 할 갈등의 어느 순간에 중요한 시선을 제시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아현 소설가
최아현 소설가

*최아현 소설가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분에 당선돼 등단했다. 공저로 <천년의 허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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