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0-07-14 14:17 (화)
선거여론조사 공표금지는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선거여론조사 공표금지는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 기고
  • 승인 2020.04.09 2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깜깜이 선택. 상품 A와 B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상품들에 관한 주변사람들의 최신 평판은 차단한 채 오래전의 평판만을 가지고서 선택을 강요한다면 과연 그 선택이 바람직할까? 오늘부터 21대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되고, 닷새 후면 본 투표일이 다가온다. 그런데도 선거일 전 6일 동안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 금지조항(공직선거법 제 108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후보자에 대한 최신 평가를 알지 못한 채 투표를 해야만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래도 이는 과거에 비하면 크게 나아진 것이다. 2005년 선거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대통령 선거는 무려 23일,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14일 동안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었었다.

“여론조사 보도금지는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1998년까지 캐나다는 투표 전날 정오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하였다. 우리에 비하면 공표금지 기간이 긴 것도 아니다. 캐나다 언론사들이 대법원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여 캐나다 대법원이 이를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위헌으로 판결하였다.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로 큰 소동이 빚어진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2년 이전까지 투표일 일주일 전부터 선거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되었었다. 1997년 총선에서 ‘르 파리지앙’ 신문이 국외(스위스)의 여론조사 발표 사이트를 링크해 놓고 간단한 논평 기사를 실었다는 것 때문에 고발됐다. 이에 이 신문은 “여론조사 결과들이 인터넷에 널려 있다. 여론조사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을 언론만이 모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결국 2002년에 여론조사발표 금지 기한을 선거일 전 하루로 대폭 줄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 깨지지 않는 전통이 있다. 법정 선거운동기간(23일) 전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후보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반면 국회의원선거는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인 6일 동안 선두가 바뀐 사례가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 정세균 후보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까지 오세훈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17%포인트 뒤졌지만 실제 선거결과는 정 후보가 오 후보를 12.9% 포인트 차이로 크게 승리하였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20대 총선 직후 실시한 유권자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7.4%가 투표 1주일 전부터 투표 당일 사이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거일 전 6일 동안 선거여론조사 공표를 금지시키는 것은 유권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의 올바른 선택을 가로막는 것이다.

약 30년 전인 1992년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사가 갖는 부정적 측면과 국민의식수준 등을 근거로 내세워 이 조항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의 제한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막판에 여론조사가 공표되면 부동층이 선두주자에게 쏠리는 이른바 우세자 편승효과(bandwagon effect)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우리 스스로가 확인하였듯이 이미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의식을 갖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SNS 등을 통한 여론조사 유포를 기술적으로 막기 어렵고, 가짜 여론조사 결과 유출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더 크다 하겠다.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참정권 행사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여론조사 금지 조항은 위헌적 요소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등국민인 대한민국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