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0-06-01 14:29 (월)
전주향교의 장판각
전주향교의 장판각
  • 김은정
  • 승인 2020.04.09 2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정 선임기자

전주향교는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인쇄 원문구조의 목판본을 보유하여 서적을 발간해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배포하여 공부 시킨 곳’이다. 전주의 오랜 출판문화 역사가 향교를 통해서도 이어졌던 셈이다. 전라감영이 출판했던 책판, 완영본 목판이 보관되었던 곳도 이곳 전주향교다. 다른 도시의 향교보다도 전주향교의 역사성이 더 특별한 이유다.

사실 전주향교가 자체적으로 발간했던 책이 어느 정도였고, 그 목판본이 어떤 규모로 얼마나 오랫동안 보존되어 왔는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당초 전주향교의 목판본과 함께 전라감영이 보유하고 있던 완영판 판본을 보관하고 있던 판고도 없어졌으니 향교 뒤편 명륜당 옆쪽으로 지어진 장판각 만이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전라감영 소유였던 완판본은 1866년 고종 3년에 전라관찰사 조한국이 향교의 판고에 옮겨 보관하게 했으나 그 후 판고가 없어지면서 판본만 남아 있었다. 1920년대에 책고를 다시 지어 관리해왔으나 이 또한 도로가 나면서 없어지고 목판본의 보관을 위해 지어진 것이 장판각이다. 1987년 새로 지은 장판각은 이후 완판본 책판을 비롯한 5천여 판의 목판을 보관하는 수장고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장판각의 기능은 오래가지 못했다. 목판 보존을 위해 필요한 방습 방충 시설이 갖추어 있지 않은데다 지나치게 좁아 목판들이 치명적인 훼손위기에 처하게 됐기 때문이다. 장판각의 목판들이 전북대 박물관으로 옮겨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천여개 목판본을 품고 있던 장판각의 쓰임은 고단(?)했다. 목판들이 전북대 박물관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전시 공간으로 새로운 기능을 얻었지만 그마저도 관리가 제대로 안된 탓에 기능을 포기했으니 그 처지가 딱하게 됐다.

장판각은 전주향교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풍경이 이끄는 대로 향교를 돌다보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 곳이다.

모처럼 전주향교를 산책하다 장판각을 만났다. 건물은 건재하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보니 그 쓰임을 다한 지 오래인 듯싶다. 장판각 앞 표지판도 훼손되어 그 역할을 잃었다.

기억의 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장판각은 건축물로서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그 쓰임만으로도 역사가 된 기억의 공간이다. 이런 공간들이 기억을 제대로 안고 있어야 전주는 전주다운 도시가 될 수 있다. 품고 있던 완판본 목판을 내어준 이후 다시 어둡고 습기에 찬 음습한 공간이 되어 빗장을 채운 장판각의 오늘이 안타깝다. /김은정 선임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