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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최형 시집 '다시 푸른 겨울'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최형 시집 '다시 푸른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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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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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내닫는 불길은 아우성으로 후끈거리더니/ 불꽃 튀듯 후드득거리더니 마침내’(시 ‘다시 푸른 겨울’ 中) 왔다던 1987년 6월. 그때 전주 팔달로에 모여든 사람들은 들판처럼 거칠었던 그곳에서, 한길 가득 ‘도도한 불빛의 흐름’을 만들었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토록 목 놓아 부르던 꿈은 여전히 신기루다.

당시 이순(耳順)이었던 한 시인은 1987년 6월항쟁부터 1991년 12월까지 전주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이 땅 민주화운동을 대하 서사시로 형상화했다. 시인 최형(1928-2015). 늘 푸른 문학청년이었던 그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하늘선비’가 되었을 그의 힘찬 목소리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형형한 눈빛은 그대로일 것이다.

최형은 시와 소설과 수필로 현실과 역사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고, 꾸준히 시대의 아픔을 토해냈다. 젊은 날의 그에게 문학은 신산한 삶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구원이었고, 현실의 모든 모순에 대한 저항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일체의 사슬과 멍에, 그리고 소외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해방과 희망의 언어였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철저한 자기 확인과 안온함에서 벗어나는 일. 시간은 포위망을 좁혀오듯 그를 에워싸기에, 세월을 머금은 그는 더 분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보통의 생활인’에서 ‘싸우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어를 분주하게 옮겨 시집 9권과 산문집 3권, 소설집 1권, 자서전 1권, 시문집 1권 등 15권의 책을 냈다. 이데아와 서정의 행복한 결합. 저항이 없어지면 문학의 고뇌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그의 샘은 절대 마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저항적인 시를 ‘사나운 것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사나운 시와 사납지 않은 시의 경계는 없다. 현실과 역사, 삶을 향해 늘 깨어있는 그의 시들은 스스로 성찰을 통해 생명을 얻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성찰은 민족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며, 그 생명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함께 안아야 할 상처이고 각성이다.

<다시 푸른 겨울>은 시대의 진공을 뛰어넘어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불러온 날카로운 긴장의 시간에서 시작된다. 고문 타살의 충격과 분노로 점화된 민중의 항거는 1987년 6월 민주대항쟁의 들불로 이어지고, 대통령 직선의 열기와 참담한 결말, 위장된 민간군사체제 노태우 정부의 출발, 그 뒤를 잇는 끊임없는 사건과 투쟁, 투쟁들…. 이 두꺼운 시집의 어느 한 면을 들추어도 생생히 살아 있는 역사의 한 단면을 마주치게 된다. 민주화의 문을 열었다는 6·29가 과연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 길고 긴 서사시는 민주화를 가져온 사람들의 고귀하고 치열했던 삶과 암울했던 역사와 고난을 어지간히도 생생하게 우리 앞에 털어놓는다. 더욱이 이 대하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 전라북도에서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낯익은 인물들이다.

이 서사시는 노(老) 시인의 눈물겨운 현장 체험의 진솔한 기록이며, 지면 안 되는 싸움, 그러나 질 수밖에 없었던 싸움에 절망적으로 매달리던 그 시절 이 나라 사회운동가들의 처절한 기록이다. 어두운 권력에 솟구치는 시인의 속내다. 이 수상한 시대에도 신록은 푸르고, 선량한 사람들의 바람은 오늘도 광장 이곳저곳을 유전하며 배회한다. 최형 시인의 추모 5주기(5월 16일), 결코 흔들리지 않던 ‘하늘선비’의 꼿꼿한 시대정신을 다시 떠올린다.

 

*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한 최기우 작가는 연극·창극·뮤지컬·창작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고 있다. 희곡집 <상봉>과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꽃심 전주>와 <전주, 느리게 걷기>,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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