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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8. 김삼의당이 남긴 조선판 부부의 세계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8. 김삼의당이 남긴 조선판 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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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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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명려각 내 김삼의당 부부 초상.
진안 명려각 내 김삼의당 부부 초상.

“부부는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뒤집히고 깨지기도 해”.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극중 지선우로 연기한 김희애의 대사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파격적인 불륜이야기라면, 우리 고장에는 조선 시기 하늘이 맺어준 부부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남원의 한동네에서 같은 날에 태어나 진안에 잠든 김삼의당 부부가 그 특별한 사랑의 주인공이다.

조선의 여류문인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은 본관은 김해이고 하립(1769~1830)의 부인이다. 여성의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던 당시의 관습에 따라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김 부인이라 불리며 남편이 『시경』에서 차용하여 지어준 ‘삼의당’이란 당호로만 전해져 오고 있다.

어린 시절 삼의당은 한글로 된 『소학』을 스스로 읽고 제자백가를 터득하여 문학에도 남다른 실력을 지녔다. “어릴 때부터 성인의 책을 읽어 성인이 가르친 예를 안다“고 했으며, ”열세 살의 내 얼굴은 꽃과 같고 / 열다섯 살엔 말이 차분해졌네 / 내칙은 이모에게 배우고 / 치장하는 법은 어머니에게 배웠네”란 시구를 남겨 몰락한 양반가였지만 예법을 터득하며 가정교육을 잘 받았음을 표현했다.
 

삼의당고 내 주고받은 부부의 시.
삼의당고 내 주고받은 부부의 시.

삼의당은 연산군 무오사화에 화를 당한 김일손의 후손이며, 하립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후손으로 남원 교룡산 기슭에 자리한 서봉촌(지금의 유천마을)에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다 부부가 되었다. 그 기이한 인연에 대하여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태어났으니, 기축년(1769) 10월 13일이었다. 같은 고을 같은 동네에서 살았으니 남원 서봉방 한 마을이었다. 병오년(1786) 봄에 혼례를 올리고 남편과 아내가 되었으니 하늘에서 정해준 배필이며 고금에 거의 없던 일이다”는 기록을 남겼다.

삼의당이 남긴 글들은 사후 110여 년이 지난 뒤인 1933년에야 『삼의당고(三宜堂稿)』로 발행되었다. 남원과 진안에서의 생활사가 오롯이 담긴 글은 총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시가 260여 수이고, 편지글 6편, 서(序) 7편, 제문 3편, 잡록 6편이 실려 있어 조선 여성으로서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기녀들이 주를 이루었던 조선의 여류문인의 작품과 달리 그의 특별함은 평범한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과 남편과 주고받은 시가 많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혼례식을 올린 첫날밤부터 특별한 마음을 시로 주고받는다. 먼저 하립이 천생연분을 만나 좋다는 마음을 전하며 아내의 도리를 다하라고 운을 던지자, 삼의당도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좋다면서 집안의 화목함이 당신 손에 달렸다고 화답한다. 이로부터 부부는 일상을 시로 주고받는 시우(詩友)가 되었으며, 시문에 남다른 하립의 부모와 형제들도 삼의당을 인정하고 격려한 덕에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삼의당은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하립의 과거 급제를 평생 꿈으로 삼고 뒷바라지를 했지만, 하립은 낙방을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가세가 더욱 기울어지자 하립의 부모 형제들과 함께 1801년에 남원을 떠나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했다. 진안에 와서는 “샘물 달고 땅 비옥한 작은 시내 남쪽 / 좋은 곳 단장하여 초가집 지었네... 사는 곳은 땅을 가려야 지혜롭다하고 / 앉으면 꼭 책을 읽어야 스스로 편안해한다네”라는 시구와 가난한 농촌 양반가의 일상과 풍습 그리고 지금처럼 전염병이 돌았을 때 심정 등을 남겼다.
 

김삼의당 부부 탄생지와 묘소 현 위치.
김삼의당 부부 탄생지와 묘소 현 위치.

또한, 하립과 부모의 봉양을 위해 장신구와 머리카락을 팔아 여비와 찬거리를 마련한 일들도 기록했지만, 가족을 진심으로 위하고 남편을 그리워하며 애태운 심정을 주로 담았다. 그러나, 하립은 42세에 이르러서야 예비시험 격인 향시에 합격하지만, 안타깝게도 본 시험인 회시에 낙방했다. 기나긴 세월 생이별을 자처했던 삼의당은 허망했지만, 낙방하고 돌아온 하립을 위해 “한양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다지요”라며 다독이고 품어준다.

“인생 말년에 시서 읽으며 천성을 즐기노라 / 어찌 구구하게 하고 싶은 것을 구하리오 / 이 한 몸 편하게 거처하니 신선이 따로 없네”라는 하립의 시구에 삼의당은 “서울에서 십 년 동안 분주했던 나그네 오늘은 초당에 신선처럼 앉아 있네”라 차운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그간 인고의 세월을 위로했다.

비록 남편이 과거급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결같이 남편을 믿고 지지한 삼의당은 하립과 함께 진안에 잠들었으며, 고향 남원에는 그녀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졌다. 요즈음 방송가는 불륜이야기가 대세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자극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삼의당 부부와 같은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천생배필을 만나 부부로 지낸 삼의당의 글과 사연은 믿기 힘든 이야기가 난무하는 세상에 보석같이 빛나는 삶의 기록이며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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