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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금요수필]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
  • 기고
  • 승인 2020.05.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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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김덕남

‘생긴 대로 논다’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무언가에 순응적인 그런 뜻만 있는 것은 아니며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말투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아는 만큼 행한다’는 뜻과도 상통하지 않겠냐는 해석을 해본다. 예술분야의 창작 활동은 타고난 소질과 재능의 바탕위에 숙련의 고통과 열정이 더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문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글을 쓰는 목적은 감동과 설득을 통해서 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이러한 ‘힘’은 바로 잘 갖춘 ‘생김’인데 그것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좋은 글을 쓰기에 적합하게 갖춰진 ‘생김’도 ‘힘’도 ‘조건’도 일천하다. 남들처럼 고전을 많이 읽기를 했나, 음악에 심취해 보기를 했나, 그림에 미쳐보기를 했나, 멋지고 우아한 춤에 빠져보기를 했나. 이런저런 핑계로 어느 것 한 가지에도 마음을 쏟지 못하고 욕심만 앞세운 시늉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황혼에 들어서 요즈음 쓰고 있는 글들도 다정다감한 끌림이나, 감미롭고 부드러운 미사여구의 문장은 꾸미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이것이 본디 내 감성의 ‘생김’이라는 방증으로 생긴 대로 놀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어려서 부터 애완동물을 길러 보고 싶은 애착이나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을 가꿔 보고 싶은 의욕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쁜 강아지나 꽃들을 외면할 만큼 냉혈한은 아니었지만 그런 전원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탓도 크다. 어찌했건 이렇게 척박한 가슴과 머리로 글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무모하게 덤볐다. 그러고는 기름진 남의 밭 수확만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비록 취미삼아 쓰는 글이지만 “꼭 이래야 하나?”며 가슴이 아파 그만 내려놓고도 싶었다.

언젠가 귀한 분으로부터 목성균 선생님의 책 ‘누비치네’를 선물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의 ‘힘’과 ‘생김’, 그 분만의 색깔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글은 나의 수필 쓰기의 지침서였다. 나도 그의 글처럼 가슴을 울리는 좋은 글을 닮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내 글이 ‘에세이스트’ 최근호 <문제 작가 특집>에 실렸다. 문제 작가!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설마 군대에서 말하는 관심 병사는 아닐 테고, 적어도 문학계에서의 ‘문제’라면 문학의 감각, 반향, 선풍 등을 뜻하는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관심거리라는 좋은 쪽의 의미일 것이다. 내가 이런 ‘문제’ 작가의 단 위에 섰다니 실로 나에게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특집의 ‘특’은 일반적인 것을 뛰어넘어 유별나게 돋보인다는 개념이다. 문제적 작가로 관심 대상이 되고 있으니 남다르게 특별히 새롭고 좋은 글을 써보라는 주문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변명으로 늘어놓은 배경처럼, 내 ‘힘’이나 내 ‘생김’이 하루아침에 달라질지가 큰 고민이다. 여태 엉터리일 수도 있는 글을 써 놓고도 내 그릇이고 내 색깔이라며 뻔뻔했다.

5년 전, 에세이스트 신인상 무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제 ‘특집작가’의 반열에 세워졌으니 석사 학위 자격의 모자를 쓴 셈이어서 어깨도 무겁고 걱정도 크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참 기쁘고 특히 나의 멘토인 남편 앞에서 더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제 내친김에 박사 학위까지도 넘보라며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쓰는 노력만이 그 해결의 답일 것이다. 앞으로 그야말로 문제작을 양산하는 문제작가가 되고 싶다.

 

△김덕남 수필가는 초등 교장으로 정년하고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향촌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추억의 사립문>이 있으며 삽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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