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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정말 그리운 그녀들
내겐 정말 그리운 그녀들
  • 기고
  • 승인 2020.05.31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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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이야기 하나.

14년 전 겨울쯤일까? 아무 기대 없이 보러간 선배들의 연극에서 무대 위 너무도 반짝이던 Y를 처음 보았다. 티비에서 보던 화려한 배우들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배역의 호흡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연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알 수 없는 울렁거림과 벅참을 느끼며 생각했다.

‘10년 뒤에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

아마도 그 날 부터였다. 소극장 특유의 쾌쾌함도 휑한 객석도 배고픈 현실도 다 잊을 만큼 매력 있는 직업을 찾은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

이야기 둘.

기본기가 짱짱하고 무대장악력도 대단하다는 H선배의 모노드라마를 보러가기로 했다. 현장에서 꽤 자주 마주쳤지만 친근하게 다가가기엔 어딘지 어려웠던 그녀. 평소 남 눈치를 많이 살피는 내 성격상 친해지고 싶다는 말은커녕 씩씩하게 인사도 한번 해본 적 없었지만 공연장으로 응원을 가게 된다면 친해질 기회를 조금은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역시 그녀는 공연내내 그 많은 관객들을 혼자서 울리고 웃기며 배우다움을 마구 뿜어댔다. 완전히 그녀에게 매료되어 버린 채, 나는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배우를 하셨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꼭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게.’

이야기 셋.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극을 시작하게 된 나는 K대표님을 만나 배우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남성연출가의 시각에서 창조된 여성캐릭터만을 연기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양한 배역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대표였던 그녀는 나에게 특유의 집요함과 꼼꼼함으로 매순간 완벽함을 요구하며 오로지 배우로 성장할 것을 강요했다. 혹독했지만 불합리 하다고 느낀적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더 완벽하게 수행했으니까. 그녀와 함께 하는 매순간 느꼈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이제껏 어떤 어른도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 넷.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를 하는 C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풍부한 감정표현과 공감능력을 가진 그녀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상상한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전달하는 능력 또한 으뜸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이상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매순간 진실한 마음을 녹여내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도.

‘C, 언제나 네가 부럽고 한편으론 자랑스러웠었어. 당신은 정말 타고난 배우야.’

나는 그녀들을 다시 무대에서 보고 싶다. 다시금 무대에서 활개 치는 그녀들의 모습이 진정으로 그립다. 누구와 비교해보아도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잘난 그녀들이 본인의 역량을 뽐낼 수 있는 터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그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싶고 찐하게 협업하고 싶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소망이거나 주책 맞은 오지랖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들을 현장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이곳은 배고프고 열악하지만 더 많은 여성예술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녀들과 있는 힘껏 연대해 이곳을 바꿔보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생각이다. 그녀들이 돌아 올 이곳이 안전하고 아늑할 수 있도록.

어떤 이유로도, 여성예술인이 현장을 떠나지 않길 바라며.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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