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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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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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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조광조, 김정 김식 등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 같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병조판서 이장곤 등은 조광조 일파의 처벌을 극력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들 사림이 과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붕당이라고 지목하여 역사책에 쓰면 후세에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고 지금 처벌하면 기껏 활성화된 언론이 다시 움츠러들 것입니다. 이들을 요직에 앉혀 그 말을 다 들어준 것도 다 임금께서 하신 일인데 하루아침에 죄를 주면 함정에 빠뜨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요순 같은 임금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온갖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격해진 것입니다. 실제로 조광조는 체포 명령을 듣고 중간에서 누가 농간을 부리는 줄 알고 집에서 나오기를 주저할 정도로 마지막 순간까지 상(임금)의 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 상소에 꿈쩍도 하지 않고 그들을 벌주려고 하였다. 조광조가 하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이 대궐로 달려왔다.

순식간에 천여 명의 유생들이 광화문밖에 모여들어 연좌농성을 벌렸고 밀지를 받은 남곤, 심정, 성운(成雲) 훈구파들이 신무문을 통해 궁중에 들어온 뒤 사림파들과 다투었다. 그 사이 중종은 특명을 내렸다.

‘남곤을 이조판서에 김근사(金謹思)와 성운을 가(假)승지에, 심사순(沈思順)을 주서에 각각 임명한다.’

주서 심사순이 미처 들어오지 못하여 검열 채세영(蔡世英)으로 하여금 대신 조광조 일파에게 죄 주는 교지(敎旨)를 쓰게 하였다.

그러나 주서의 역할을 대신하게 한 채세영은 붓을 쥐고서 그들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채세영은 몸이 약하여 그가 입고 있는 옷조차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중종 임금이 지켜보는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의 죄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빈말을 교지를 차마 쓸 수 없다”

성운이 붓을 다시 뺏으려하자 채세영은 손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이것은 역사를 쓰는 붓이다. 아무나 함부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임금과 훈구파 앞에선 부질없는 일이었다. 훗날 채세영이 길을 가면 사람들은 “저 사람이 임금 앞에서 붓을 뺏은 사람이다”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잠시 동안 주서를 맡은 채세영은 그 역할을 잠시 무사하게 맡고 있다가 나가면 되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항변했던 것이다.

이런 선비, 이런 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역사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 나라는 어떤가? 자기 자신의 작은 이익과 명예, 그리고 권력 앞에서라면 회사의 기밀도 나라의 기밀도 빼돌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리나 지조는 헌 신짝 버리듯 버리고도 아무런 가책을 받지 않고 도리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시대가 오늘의 이 시대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소인이라는 생각이 고착되어 정의는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서 그 문화가 어느 사이 고착되고 말았다. 그냥 답답할 뿐, 방법도 없다.

이 중차대한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역사가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고위 공직도 그렇지만 아래 자리라도 국가의 녹, 즉 월급을 받고 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런 만큼 그 자리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 임무를 다하는 것, 공직자들의 임무이자 의무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직에 임해서 그 직분을 다한다면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울까?

그래도 이 땅에 올바른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이 희망만은 아니길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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