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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9. 한반도를 관통한 국도 1호선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9. 한반도를 관통한 국도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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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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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1호선 노선.
국도 1호선 노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란 길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다. 이는 로마의 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구로, 도로 건설에 능했던 로마인들은 그 기술을 바탕으로 로마를 중심으로 뻗어가는 길을 완성했다. 로마인들의 욕망을 실은 그 길은 군대가 이동하고 물자의 교역과 문화를 전하는 통로였다. 그러한 길의 역할은 인류가 있는 어느 곳이라도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 지역에도 또렷한 땅의 역사로 남아있다. 그 중, 목포에서 정읍을 지나 전주, 익산, 천안, 서울,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한반도를 관통하는 국도 1호선은 수많은 흔적을 품고 길 위에 사연을 더하고 있는 도로이다.

고대 부족 간의 교류로 형성되기 시작한 길은 삼국시대부터 도로로 정비되고 역이 설치되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경주였다가 고려시대에는 개성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도로망이 형성되었고 통일문화의 꽃을 피웠다. 조선시기에는 한양인 서울을 중심으로 역로가 만들어져 운영되어 발전하였다. 지금의 국도 1호선의 노선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령으로 ‘신작로’를 놓은 것을 근간으로 하는데, 당시 신작로는 경성인 서울을 중심으로 과거 삼남대로인 삼남길의 노선을 대부분 이어받은 것이었다.

삼남대로는 ‘삼남 지방을 가는 큰길’로 한양을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삼남지방인 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총칭하고 ‘삼남대로’는 구체적인 길의 명칭이라기보다 이 지방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삼남대로라는 명칭의 사용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삼남’이라 자주 등장하고 조선 중기 이후 문집, 지방 군현 지도 등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명칭으로 보인다.
 

국도 1호선과 삼남대로 비교 지도.
국도 1호선과 삼남대로 비교 지도.

그중, 국도 1호선의 근원이 된 삼남대로의 흔적은 1770년 신경준이 기술한 『도로고』상의 6대로 중 제5로인 ‘제주로’에 해당하고, 1861년 제작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상의 10대로 중 제8로인 ‘해남로’에 해당한다. 그 일부 구간이 현재 남한의 국도 1호선 노선과 동일하여 충남 천안 이북 구간은 조선의 주요 ‘대로’와 비슷하지만, 이남 구간은 일제의 수탈과 식민 통치 목적에 따라 일부 변형되었다.

일제강점기 러일전쟁을 앞두고 있던 일제는 비밀리에 밀정을 파견하여, 국내의 간선도로를 조사했고, 러일전쟁 후 한반도 지배권을 장악하자 본격적인 수탈을 위해 항만·도로정비, 철도의 건설을 추진하는 등 기반시설 확충에 힘을 기울였다. 일제는 당시 일본인 거점과 수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를 연결하는 경로를 찾는 작업을 진행하여, 목포와 군산의 개항장을 거점으로 내륙의 곡창지대를 연결하는 노선을 선정했다.

전북에서는 군산항을 거점으로 만경강의 평야지대를 관통하여 전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전주는 조선시대부터 행정중심지이자 물자의 집산지로 평야지대의 종점이라는 지형적 조건도 있어서 지목되었고 전남에서는 목포항에서 영산강 유역의 곡창지대를 연결하는 노선을 택했다.
 

조선총독부관보(1938년 12월 01일)내 실린 3번 경성목포선(국도 1호선 전신).
조선총독부관보(1938년 12월 01일)내 실린 3번 경성목포선(국도 1호선 전신).

일제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도로를 정비하며 3번(경성-목포)과 2번(경성-신의주)으로 부르며 ‘신작로’를 조성하여 서울 이북은 만주 침략의 이동통로로 호남의 구간은 수탈의 통로로 사용했으며, 국도 1호선의 근간이 된다. 광복 후 정부수립과 6.25 전쟁을 치른 후 분단되어 신의주까지 이어지던 길은 파주 임진각에서 멈추었고, 1963년 일본이 건설한 신작로를 중심으로 노선을 지정했는데 지금의 국도 1호선은 당시에는 신작로의 노선을 따라 3번인 ‘경성목포선’이었다. 이후 1971년 ‘일반국도 노선지정령’에 따라 오늘날의 ‘국도 1호선’의 명칭이 확정된다.

국도 1호선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품고 있어 길에 자리한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정취가 다채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하멜이 제주에서 표류하여 한양으로 압송되던 길이기도 했지만, 선조들이 큰 꿈을 품고 한양으로 가던 길이기도 했다. 그중 한양을 오가려면 반드시 거쳐 지나가던 정읍의 과교천(목제천) 위에 놓인 나무다리는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가 그 다리를 건너면 합격을 한다는 삼남길 내 행운의 전설이 깃든 곳이었다. 또한 그 길은 동학농민혁명군이 꿈을 꾸며 지나던 길이었다.

한편 이 길은 많은 이들이 유배지로 귀양을 가던 슬픔의 길이기도 했다. 정약용, 송시열, 김정희 등이 이 길을 통해 유배된 인물들이다. 왕족인 이방간이 유배를 와 자리 잡은 곳을 향해 세 번의 예를 갖추었다는 데서 삼례의 지명이 유래가 되었다 하며, 그 삼례의 만경강가에 자리한 정자인 비비정은 송시열이 비비정기를 써주며 그 의미를 지역에 새겨놓았지만, 이후 송시열은 유배를 가다 그 길이 이어지는 곳인 정읍의 한 길목에서 사약을 받고 명을 달리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내 목제천 기록과 정읍 피향정 하연지.
『신증동국여지승람』내 목제천 기록과 정읍 피향정 하연지.

풍류를 즐긴 선조들의 흔적과 민초들의 고단한 흔적까지 고스란히 깃든 길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안타깝게 사라진 것들도 많다. 마을에서 ‘깻다리, 목다리, 과교’로 불린 나무다리는 콘크리트가 대신 자리한 채 전설로만 남아있고, 인근 피향정에서 아름답게 연꽃을 피어내던 두 연못 중 ‘상연지’는 일제가 신작로를 내며 메워져 사라진 상태이다. 하지만, 그 길 깊은 진흙 안에는 피어나길 꿈꾸는 연의 씨앗과 어려운 시절을 지나는 우리에게 행운을 건네줄 전설이 잠자고 있다. 게다가 멈춰버린 신의주까지의 국도 1호선의 노선도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온전하게 이어지는 꿈을 꾸게 한다.

과거 누군가에게 길은 욕망을 내달리게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과는 다른 일상의 길을 나서는 지금은 오래된 길에 남겨진 선조들의 흔적이 힐링의 길이 되고 나아가 지역의 자산이 되어 모두의 힘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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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06-12 13:23:28
나날이 좋은 정보를 수집, 정리한 글을 접하는 것도 행운입니다. 교통이 발전한 요즘도 국도 1호를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요. 인적, 물적 유통이 뒤따르니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인지 부동산도 국도1호나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다른 지역과 가격차가 뚜렸하다고 하지요. 오늘은 어려서 자주 접하던 '신작로'라는 정겨운 말을 여기서 다시 접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