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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과 도시 풍경
홍콩보안법과 도시 풍경
  • 김은정
  • 승인 2020.07.02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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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오래전 홍콩을 다녀왔다. ‘도시의 건축물과 디자인’을 주제로 한 답사였다. 뜻밖에도 홍콩의 거리와 뒷골목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아마도 몇 편의 홍콩영화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 곳곳에 들어서있는 건축물을 만나면서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건축 트렌드를 주도하는 도시이자 디자인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 19세기 빅토리아풍 건축물 옆에 치솟는 초현대식 빌딩이 이어지는가하면 그 아래로는 용마루를 치켜세운 중국 사원이 시간의 깊이를 자랑하고 있는 공간. 거장 건축가들의 이름을 내세운 수많은 건축물까지 서로 다른 매력으로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도시. 서로를 거스르거나 침범하지 않고 공존하면서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극적 장면들을 곳곳에서 분출해내고 있는 도시의 이미지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홍콩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었다. ‘홍콩다움’을 발견하게 해준 공간, 어렵게 찾아내 답사했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다. 아시아 예술의 역사를 집적해놓은 이곳은 이미 아시아 각국의 온갖 예술 자료와 책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시아 각국의 예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학예연구사를 국가마다 상주시키며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치밀했다. 기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 홍콩의 미래가 궁금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홍콩이 중국령이 되자 시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이후 22년, 지난해 홍콩은 새로운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쌓았다.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확대된 2019년의 홍콩 민주화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점점 더 힘을 더해가는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중국 정부가 그냥 둘리 없었다. 지난 6월 30일 중국 정부는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열고 홍콩국가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분리 독립 추진 △체제전복 시도 △테러 활동 △외부세력 결탁 등을 방지·중단·처벌하는 것을 뼈대로 삼은 보안법이다.

시행 첫날에만 300명이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홍콩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줄이어 해체 선언을 하고 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보안법의 위력 앞에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권리와 자유를 묶는 보안법의 강력한 힘이 몰아치고 있는 까닭이다. 역동적이고 창의적이었던 홍콩의 도시 풍경도 이제 더이상상상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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