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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26) 고독한 감꽃 시인, 이철균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26) 고독한 감꽃 시인, 이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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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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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균 시인.
이철균 시인.

이철균 시인은 우리 문단에 “고독한 감꽃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 한 권 남기지 않고 세상을 버린 시인, 그의 제자 이운룡은 시인의 시를 모아 유고시집 『新卽物詩抄』를 발간하여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렸다.

이 시집명은 생전에 시인이 지어놓은 이름이고, 시와 시론의 원고 배열, 목차, 평설 및 장정까지도 시인이 출판을 위해 준비한 그대로라고 한다. 시인은 1927년 3월 15일, 전주의 물왕몰에서 부채를 만드는 집안의 이형환과 김금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였고 6·25 이전에는 목포의 문태중학교에서 1년 남짓 근무하였으며 전쟁 이후부터 1958년도까지 전주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전주고등학교 재직 중에 『문예』에 시 <염원>(1953.2), <한낮에>(1953.6), <소리>(1954.3)로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그 무렵 시 동안지 <남풍>을 주재하고, 잡지 <인물계>의 편집을 맡기도 했으니 그의 삶은 오로지 시와 함께였다. 해마다 주옥같은 서정시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유별나게 독신을 고집하여 홀로 지내다가 1987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철균의 시에는 동양 정신의 하나인 ‘무(無)위 사상’이 주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초기 작품의 대부분은 동양 정신에 입각한 무위(無爲)가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1960년 이후부터는 조금씩 현실에 눈을 돌려 <감꽃>, <정거장 부근에서>, <낙엽 풍경> 등을 발표하여 원숙한 시 세계를 표현하였다. 시인은 한평생 시의 길만 오롯하게 걸었다. 시는 곧 그의 생활이면서 분신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의 삶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했지만, 결코, 어느 한순간에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시의 길을 고집하였다. 시인의 삶은 항상 낙관적이었으며 자신만만했다. 제자나 지인들의 서술에 의하면 시인은 술자리에서 취기가 돌면 금방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어린이가 되었고, 가난했기에 주변 친구들의 신세를 지면서도 항상 당당했다고 한다.

시인이 시를 쓰는데 남다른 집요함을 보인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인 것 같다. 시인이 전남 목포의 문태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문태중학교 교장인 아버지를 따라 이 학교에서 공부한 강우택 씨는 이철균 시인과 한방에서 지냈던 추억을 이렇게 서술해 놓았다.

“이철균 선생은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지에 뭔가를 쓰고 구겨버리고 또 쓰곤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구겨진 원고지가 한 뭉치씩이나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선생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딴짓은 다 해도 시를 쓰는 일, 문학은 어려운 것이라고 판단, 일정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육필원고 및 이철균 자전시집 신즉물시초 지형.
육필원고 및 이철균 자전시집 신즉물시초 지형.

매일 밤 밤새도록 원고지와 씨름한 시인은 6.25 전쟁 때 전주에 있는 부모님이 궁금하다며 돌아간 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뒤로 소식을 모르다가 우연히 덕진공원에서 시인의 시비를 보고 그를 떠올리며 쓴 수필에 나온 내용이다.

그의 제자 이운룡 시인은 이철균 선생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유인 이철균 시인은 진짜 시인이다. 시인으로서 긍지와 자존심을 꺾지 않았음은 물론, 고고한 시 정신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시와 맞붙어 일생을 두고 1대1로 싸운 선생의 치열한 정신과 의지는 모든 시인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정말로 처절한 고투였다. 외로움이 시인의 전유물이요 고독한 삶이 시인의 운명이며 인생인 것처럼 피붙이, 살붙이 하나 남김이 없이 그리고 자신의 무덤조차 남기지 않고 재로 뿌려졌지만, 이제 저승의 한 점 바람 앞에 하얀 감꽃 그림자로 서서 이 『新卽物詩抄』를 바라보고 쓸쓸한 미소를 띨 것이다.”

항공대학교 윤석달 교수는 이철균 시인을 “시대의 아웃사이더, 외로운 단독자였던 시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삶은 고독한 여정이었고, 외로의 연속이었다. 그의 시 <감꽃>은 빼어난 수작이라는 평가다. 그의 초기 시부터 감꽃을 노래했다. 감꽃의 순수한 소박미와 동양적 정서를 잘 그려낸 시인, 감꽃처럼 수줍게 피어나 감꽃처럼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갔다.

 

쑤꾸기 소리 따라 감꽃은

하나 둘 피어났는가?

 

다시는 오지 못할 푸르름 밑에

하마터면 뜨지 못한 나의 눈빛이

진정 새로운 뜻으로만 피어나는가?

의좋은 어느 집

어린 형제와 같이

돌담 위에 서로의

손짓이 보일 듯

 

어제 밤 너와 나와의

아쉽던 가슴 위엔

저기 저 감꽃이

쑤꾸기 소리 따라 피어났는가?

-<감꽃>전문

 

이 시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인 자신의 간결하고도 근원적인 소망이 눈물로 아롱져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되었다. 최종한의 박사학위 논문「존재론적 시 의식 연구」에서 “쑤꾸기 소리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근원적 어떤 것이며 부재(不在)다. 그리고 쑤꾸기 소리로 인하여 형상을 갖춘 감꽃은 새로운 생명이며 존재(存在)다. 따라서 여기에는 쑤꾸기 소리가 곧 감꽃이고 감꽃이 곧 쑤꾸기라는 인식이 내재하여 있다. 즉 부재가 존재이고 존재가 부재인 것이다.”

시인은 육십 평생 시를 썼지마는 살아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낸 바 없다. 그렇다고 국정교과서나 문학 교과서에 실린 적도 없어서 시인이 활동상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문학 활동을 했던 많은 제자와 시인들은 그의 삶을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인의 고독한 생애와 시집 한 권도 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중산 이운룡 시인을 비롯한 우리 고장의 문인들이 뜻을 모아 전주 덕진시민공원에 시비를 세우고 4년 간(2002-2005년) ‘이철규문학상’을 주고 시인의 삶을 기렸으니 얼마나 가슴 든든한 일인가. 그 시비에는 그의 시 <한낮에>가 새겨져 있다.
 

전주 덕진시민공원의 이철균 시비.
전주 덕진시민공원의 이철균 시비.

영(嶺)을 넘어

구름이 가고

 

나비는 빈 마당 한구석

조으는

끝에

 

울 너머

바다를

 

흐르는 천봉(千峯)이

환한 그늘 속 한낮이었다.

<한낮에> 전문

 

한 폭의 그림처럼 한가롭고 고요한 시가 속에 그려진 마을의 풍경이 떠오르는 시다. 어떤 요사한 관념이나 현란한 수사도 없이 여름 한낮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낸 시로, 여기에도 동양적 사고가 유유하게 흐르고 있음을 감지한다. 시인이 시집을 내려고 준비했던 ‘자서’에 의하면 ‘나의 시 대부분은 무수한 자살에 직면하면서 그 위기를 새로운 차원으로 극복해 간 나름의 눈물이요, 내 존재의 집들’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많은 시가 그렇기 쉽게 씌여진 시가 아님을 곧 눈치채게 한다. 시인이 직접 이름 지어놓았다는 유고시집 『新卽物詩抄』도 ‘즉(卽)’의 철학이라는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감꽃의 시인“ 이철균 시인은 우리 곁은 외롭게 떠났지만, 시인이 남긴 주옥 같은 시편들은 전북 문단의 후배들에게 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것이다.


/송일섭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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