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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하늘 길과 이스타항공
전북의 하늘 길과 이스타항공
  • 기고
  • 승인 2020.07.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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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전북지역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하늘 길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그 열망은 두 차례에 걸쳐 펼쳐졌다. 일제 강점기에 신용욱과 2009년 이상직에 의해서였다.

먼저 고창출신 신용욱의 경우부터 보자(남긴 뜻 천년 흘러, 2000). 1925년 고창군 신림면 평월리 공터. 이 일대에는 정읍과 고창, 부안 등에서 새벽밥을 먹고 나온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난생 처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낮쯤 쌍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가 일대를 몇 바퀴 돌면서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 비행기에는 24살의 신용욱이 타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흥분했고 흥분은 곧 만세소리로 바뀌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재현이었다. 이날 사건은 일제치하에 눌려 있던 민족의 자긍심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쾌거였다. 신용욱은 안창남보다 1년 늦게 일본 오꾸리(小栗) 비행학교룰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인 최초로 국제조종사가 되었다. 이후 그는 서울 여의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학교를 세우고 1936년 조선항공사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해방되던 해, 대한민국항공사(KNA)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 정기노선인 서울-부산 간을 운항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대한민국항공은 1958년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되고 잇달아 사고가 터지면서 1962년 도산하고 말았다. 정부는 대한민국항공사를 인수, 국영기업체로 운영하다 1969년 오늘의 대한항공(KAL)을 탄생시켰다. 신용욱은 우리나라 민영항공의 문을 연 선구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신용욱은 정치에 관여해 오점을 남겼다. 1950년과 1954년, 2·3대 민의원에 당선돼 자유당 전북도당 위원장을 맡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권력을 너무 남용했다. 결국 사업 실패와 4·19 혁명으로 1962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음, 김제출신 이상직의 경우를 보자. 2009년 1월 6일 군산공항. 이상직 회장이 설립한 이스타항공 1호기가 김포-군산-제주 노선의 시범운항을 마치고 활주로에 도착했다. 이날 군산공항에는 김완주 도지사, 강봉균 국회의원, 송하진 전주시장, 문동신 군산시장 등 전북지역 각급 기관장이 참석해 이스타항공의 성공적인 취항을 축하했다. 항공 오지인 전북으로서는 실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이날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이스타항공 1호기로 제주도를 방문하고 군산으로 돌아왔다. 그날 전북일보 기사 1면 제목은 “이스타항공, 새만금 하늘 길 열다”였다.

본사를 군산에 둔 이스타항공은 그 뒤, 본사를 서울로 옮기고 국내선 4곳과 일본·중국·대만·방콕 등을 운항하는 등 저가항공으로서 꽤 선전했다. 그러다 딱 10년 만에 방만한 경영과 2019년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여파로 치명타를 입었다. 타개책으로 마침 아시아나 항공 인수에 나섰다 실패한 애경그룹(제주항공)이 매수의 손길을 뻗쳤다. 그러나 2020년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외 항공노선이 셧다운(노선운항 전면중단)되면서 인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 자녀들의 편법 승계 및 불법증여, 임금체불, 차명주식, 문재인대통령 사위의 취업알선 등 의혹이 불거졌다. 더욱이 지난 19대에 이어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전주 을)에 당선, 정치적으로 야당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이스타항공과 관련된 의혹을 파헤칠 ‘특위’를 구성키로 한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전북지역의 열망을 담아 하늘 길을 개척하고 직원 1600명 중 500명 이상이 이 지역출신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사회생해 전북의 하늘 길을 다시 날 수 있을까?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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