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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의 수난
‘반구대 암각화’의 수난
  • 김은정
  • 승인 2020.07.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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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선사시대의 암각화가 새겨진 암벽을 발견했다. 울산 울주군 일대의 불교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였다. 국보 147호로 지정된 울주군 천전리 각석이다. 그리고 1년 뒤 문 교수는 또 다른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는 반구대 답사에 나섰다. 천전리에서 대곡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오다 만나는 반구대 아래쪽의 바위들. 조사단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늑대와 사슴, 호랑이와 표범, 사람과 고래 등 무려 300여개에 이르는 그림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암각화의 존재.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발견되었다하여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고도 불리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다.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걸작으로 꼽히는 선사시대의 유산 ‘반구대 암각화’가 또다시 물에 잠겼다.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장맛비 때문이다.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것은 악재 중에서도 악재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는 1965년 하류지역에 사연댐이 조성되면서 해마다 댐 수위가 올라가는 7~8개월 동안 물에 잠겨 있는 등 노출과 침수를 반복하면서 이미 치명적인 훼손의 위험에 놓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 형체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300여개 중 20여개 뿐. 암각화 대부분이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다. 더 이상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더 절박해진 이유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같은 내용으로만 벌써 일곱 번째 청원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해결된 것이 없다는 증거일터다. 여러해 전, 문화재청이 ‘반구대 암각화 태스크포스’를 꾸려 보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무산된 모양이다.

들여다보니 눈에 띄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이다. 이미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상태이니 지난해부터서야 본격화된 정식 등재 추진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사연댐 완공 이후 50년 넘도록 훼손이 지속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 없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일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앞뒤 순서가 바뀐 형국을 보니 우리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수천 년 전의 문화유산 반구대 암각화의 수난이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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