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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록문화를 엿보다
조선의 기록문화를 엿보다
  • 최정규
  • 승인 2020.08.09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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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어진박물관 ‘만세의 공론, 조선왕조실록’ 기획전시, 16일까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봉안’, ‘역사를 지킨 전북· 전주사고’ 등 다뤄
태조실록
태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때부터 철종 까지 조성 왕 25대, 총 472년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천문·풍속·예술 등 조선사회의 제반 모습을 총망래해 기록한 방대한 역사서다. 다만, 고종과 순종 실록은 일제의해 편찬돼 통상적으로 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 후 1997년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조성왕조실록은 선조들의 기록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실록의 위대한 기록을 한 눈에 엿볼 수 있는 뜻 깊은 전시가 마련됐다.

전주어진박물관은 ‘만세의 공론, 조선왕조실록’ 기획전시를 오는 1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한다.

전시는 총 3부로 나눠져 있다. 1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봉안, 2부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 3부 역사를 지킨 전북, 전주사고 등이다.

특히 이번 전시의 핵심은 10여년에 걸쳐 완간된 ‘조선왕조실록’ 복본 전권을 전시한 것이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그 방대한 양의 복본을 전시해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실록의 편찬과 관리

이번 전시에서 실록이 어떻게 편찬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실록은 왕이 승하하면 그 왕대에 있었던 일을 모아 실록으로 편찬했다. 실록 편찬을 주관하는 관서는 춘추관으로 실록편찬은 초초, 중초, 정초 세 단계를 거쳤다.

실록을 어떻게 봉안하고 관리했는지도 잘 설명되어 있다. 실록은 전국의 4대사고(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에 모두 봉안했는데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궤어 넣어 보관했다. 궤에는 방충·방습을 위해 천궁, 창포가루를 담은 주머니를 넣어두었다고 한다. 사고 전반적인 관리는 참봉이 했고, 주변 사찰의 주지를 실록수호총섭에 임명해 사고를 수호토록 했다. 이번 전시는 봉안 재연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전주경기전 전주사고.
전주경기전 전주사고.

△전북과 전주 없인 조선왕조실록도 없다

실록은 전북과 전주사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평가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한양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의 실록이 모두 불타없어졌다. 이후 경기전 참봉 오희길, 태인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 등이 조선사고에 보관 된 실록과 태조어진은 정읍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했다. 이후 무사 김홍무, 영은사(현 내장사) 승려 희묵을 비롯한 승려 5여명, 인근의 산척 100여명이 1년을 왜적으로부터 지켜왔다. 전북의 선조들의 노력으로 전주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만이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임란 이후 전주사고가 폐지되고 무주 적상산성에 사고가 새로 설치돼 묘향산사고에 보관하던 ‘실록’을 옮겼다.

전주사고본은 임란 후 정족산사고에 봉안되었다가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에 옮겨져 있다.

어진박물관 관계자는 “지금까지 실록 전체를 전시해 그 방대함을 보여준 경우는 없었다”면서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과 이를 만들어낸 조선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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