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0-09-21 11:24 (월)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 기고
  • 승인 2020.08.11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중학교 3학년 영어 선생님이 참 좋았다. 요즘 시대의 표현으로 ‘걸크러시’, ‘쿨한 언니’처럼 거침없는 언변과 시원한 성격을 동경했다. 당연히 영어 수업 시간이 재미있었고, 영어를 좋아했다. 그런데 영어가 단번에 싫어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독해를 어려워하는 짝꿍을 잠시 도와주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언짢은 듯 일으키시더니 전후 사정은 묻지 않고 ‘수업 시간에 떠드는 오만방자한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평소처럼 거침없는 선생님만의 말투였는데도 억울함이 더해지자 이는 비수로 변해 마음에 꽂혔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의 경계 대상이 되었고, 영어 시간은 거부의 장이 되었으며, 그렇게 영어와 이별을 했다.

‘오만방자한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영어만을 써야했던 미국 유학 중에도 종종 떠올랐고, 취업 후에도 불쑥 찾아와 마음을 두드렸다. 소심했던 여중생이 선생님께 묻지 못했던 질문, ‘왜 내가 오만방자한가요?’는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남겨졌다. 그날 선생님의 단 한마디의 말은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되어 신기하게도 그 날 교실의 풍경, 선생님의 이름 세 글자와 함께 기억의 중심에 깊이 각인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남들보다 한참 늦게 방송을 준비하게 됐다. 방송은 당시 하고 있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기에 ‘설마 네가..’라는 물음표가 따라다녔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기회를 위해 준비하며 아카데미를 수강했고,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 어색하게 앉아 열심을 다 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실력은 단기간에 향상되지 않았고, 어느 것 하나 보장되지 않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솟아올랐다. 호기롭던 자신감이 행방불명될 때마다 인자했던 한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잘 하고 있고, 강주연은 가능성이 있어!” 수강생 모두에게 당연하게 해줄 수 있는 정답과도 같은 응원의 메시지였지만 그 한마디의 말에 다시 힘을 내보기로 다짐하고 포기하지 않은 결과 오늘에 이르게 됐으니,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불화가 생길 때는 늘 ‘말’이 단서가 될 때가 많다. 의미 없이 뱉은 말 한마디로 예기치 못한 극한의 감정싸움이 시작되곤 하니, 말의 힘이 두렵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나 말로 실수를 많이 하고난 후였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통해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 ‘내가 듣고 싶은 말과 행동대로 남들에게 그대로 해주기’를 다짐했다. 후배였을 때 겪기 싫었던 것은 상사가 되어도 후배들에게 하지 말기, 긍정과 칭찬의 말로 사람 세워주기, 내가 듣고 싶은 말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기 등 간단한 규칙들을 정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타인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헤아리긴 어렵지만, 내 마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대로, 듣고 싶은 대로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 그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될 것이고, 이는 ‘자아존중감’을 보장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항상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남들이 다 하면 넌 더 잘할 수 있어. 우리 딸, 믿어!”

나를 숨 쉬게 했던 이 말을 지금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당신, 잘 할 수 있어! 난 그대를 믿어.”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남도 듣고 싶은 말이다. 위기의 순간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건넨 ‘당신이 듣고 싶어 하던 그 한 마디의 말’로 인해 그 날이 평생 기억나는 하루로 기록이 될 것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