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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
[금요수필]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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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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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
임영희

벌써 반세기가 된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큰 병원에서는 심리치료로 음악요법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TV가 별로 없어 FM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이 전부였다. 해거름 퇴근할 때쯤이면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는 향수 짙은 고향노래가 나를 달래주었다. 문호 셰익스피어도 ”음악을 듣는 순간은 모두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 모두가 코로나로 불안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트로트가 큰 위로를 준다. 태어날 때 4.2Kg의 우량아로 울산에서 태어난 어느 가수는 10살 때 부모와 헤어져 할머니의 슬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가난하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맞기도 일쑤였다. 그래서 폭력에 시달리다 폭력 단체에 가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간절한 만류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김천예고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 전학을 해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서 선생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더니 ”너는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고 말해 가슴에서 에밀레종을 치는 소리가 났단다.

그러다 고교 3학년 때 당시 공중파에서 놀라운 시청률을 자랑하던 스타킹에 나오고, 23세 때 다시 그 방송에 나왔는데 패널 가운데 전문교수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표현된 노래라며 극찬을 했다. 예전보다 안전감 있고 호소력이 훨씬 성숙했다며 청중들의 기립 박수도 받았다.

이후 그 일을 계기로 유명대학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동영상을 본 독일 RUTC 대학에서 제의가 들어와 유학하게 된다. 유학 중에 한국 음식이 너무나 먹고 싶어 찾아다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곰탕을 먹고 있는데 ‘찔레꽃 노래’가 흘러나와 곰탕 국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후 집에 와서도 그의 전축에서는 찔레꽃 노래만 종일 나왔다. <찔레꽃>은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듣던 유일한 노래란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라는 가사다. 그리고 가끔 한국 노래 CD를 사러 갔는데 ‘루치아노 파바로티’ 노래를 듣고 웅장함에 매료되어 성악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전설의 카루소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귀국해서는 예식장 등 닥치는 대로 노래를 불렀으나 전 재산을 소속사에 사기를 당했다. 이후 물탱크 청소 등 궂은일을 하며 라면 하나로 이틀을 버티며 살았다. 그러다 지난 3월 종편에 방송된 트롯 서바이벌 미스터 트롯에 출연해 4위에 올라 유명세를 치렀다. 그는 출연 당시 성악가 출신인 점 등이 화제가 돼 트롯과 성악가 파바로티를 합친 트바로티라 불리며 출연자 중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성악을 하다 트롯을 부르려니 부단한 노력을 했으리라.

지금은 스승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성공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불우한 과거를 씻어가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입대도 미루며 영화도 두 번 찍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얼마전 종편 콜센터 신청곡에서 60살 가까이 된 아줌마가 오빠라며 환호할 때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흐뭇하기까지 했다. 또 한 청년은 취업의 고민 중 그의 노래를 신청해 듣고 위로를 받았다. 베트남에서 온 여자 암 환자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고 좋아했다.

이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전국노인복지관에 1억 원 상당 손 소독제를 기부하였다. 음원 수익금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기부한 것이다. 항상 ”인사 잘하고 남에게 박수 받는 사람 돼라. 남에게 욕먹지 않는 사람 돼라“는 할머니의 유언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 임영희 수필가는 전북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어 문학에 입문해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문화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야기할머니로 유치원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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