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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공간의 변신과 이벤트
낡은 공간의 변신과 이벤트
  • 김은정
  • 승인 2020.08.13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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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선임기자

“적의 에너지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여 새롭게 활용한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거대한 산과 같은 벽돌건물의 물리적인 힘을 부수거나 축소시키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면서 의외의 방향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는 미술관의 하나로 우뚝 선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설계한 스위스 출신 젊은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므롱이 들려준 이야기다. 20년 이상 방치되었던 화력발전소의 변신은 놀라웠다. 2000년에 문을 연 이 미술관에는 개관 첫해에만 관람객 500만 명이 몰렸다. 당초 예상했던 관람객을 훨씬 뛰어넘는 이 유쾌한 행렬은 오래된 건축물이 미술관으로 재기(?)하는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술관 앞을 지나는 템즈강 남쪽 슬럼가가 살아나면서 쇠퇴해가던 도시도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사실 19세기 산업화를 주도했던 영국은 도시재생의 모범적인 나라로 꼽힌다. ‘문화’와 ‘공간’을 중심에 세워 도시재생을 성공시킨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이들 성공한 프로젝트 대부분이 치밀하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이트 모던’ 만해도 영국 정부가 추진했던 ‘밀레니엄 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였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대처수상의 뒤를 이은 존 메이저 수상이 1995년 영국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며 선언한 도시 정책 프로젝트다.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 그리니치빌리지 밀레니엄 돔 , 세계의 최대 회전 그네인 런던아이, 템즈강의 보행자 전용다리인 밀레니엄 브릿지, 그리고 낙후된 템즈강 남부의 재활성화가 이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이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가장 성공적인 ‘테이트 모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진 도시정책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도 도시재생이 한창이다. 그 중심에는 낡고 방치되어 있던 건축물들을 도시 동력의 새로운 통로로 만드는 사업이 놓여 있다. 실제로 이미 새로운 쓰임을 얻어 도시를 알리는 공간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들 공간들이 주목받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도시마다 성공한 사례로 내세우는 재생 공간들의 획일적인 쓰임 때문이다. 우리 지역 공간들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의 역사성과 특성을 고민해 담아내기 보다는 쓰임의 외형적 변신에만 급급한 공간들이 늘고 있다. 낡은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을 이벤트 정도로나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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