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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3) 신선들의 거처, 진안 수선루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3) 신선들의 거처, 진안 수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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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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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수선루(보물 제2055호)
진안 수선루(보물 제2055호)

“문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만나는 것” 즉, 집에 누워서 하는 유람을 송나라 소옹은 ‘와유(臥遊)’라 했다.

조선의 이익은 “몸은 누워 있지만 그림을 그려 눈앞에 펼쳐놓고 천하의 산수를 관람하는 것”이라 했으며, 정선의 그림에 “발로 밟아서 두루두루 다녀 본다 하더라도 어찌 베갯머리에서 이 그림을 마음껏 보는 것과 같겠는가”라는 구절이 달려있듯이 이는 조선 선비들 사이 유행을 이끈 문화였다. 요즘 말하는 조선판 랜선 여행이 와유였던 것이다. 당시 우리 고장의 명승지인 지리산과 변산을 비롯한 여러 풍광을 담은 그림과 유람기를 나누며 상상을 더해 이야기꽃을 피운 선조들은 지금 우리와 닮아있다.

요즘 우리는 추억이 깃든 사진을 들춰 보기도 하고, 가고픈 곳의 모습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기나긴 장마와 태풍 그리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를 지켜보며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이 커져만 간다. 엄청난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남원에서 조선 선비들의 유람 일번지였던 광한루원이 건재하다는 소식에 그나마 안도하며 야경이 빚어내는 모습을 따라 달빛야행을 시작한다. 광한루원 앞의 요천을 따라 내려가 상처투성이 섬진강 물길을 만나는 곳에서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진안의 수선루를 만나게 된다.

‘신선이 잠자는 곳’으로 이름 지어진 수선루(睡仙樓)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굴에 세워진 누각이다. 수선루가 지어진 사연도 특별하지만,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바위 동굴 틈 사이 딱 들어맞게 끼워 넣듯이 기막히게 세워진 모습은 가히 독보적이다. 천연 바위굴에 누각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암석이 진안의 마이산과 같은 역암이기 때문인데, 역암은 모래와 진흙과 자갈 등이 섞여서 굳어진 암석으로 표면에 벌집같은 구멍이 많아 짓기가 수월했을 것이라 알려졌다.
 

진안 수선루 부분 사진.
진안 수선루 부분 사진.

그런 물성을 지닌 암반이라지만, 바위굴 공간의 크기에 맞추어 조화롭고 아름답게 지은 솜씨가 놀랍다. 신선이 잠자는 곳이란 명칭에 걸맞도록 온돌을 놓아 아늑하게 방을 들이고, 아궁이는 뒤로 빼놓았다.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연과 어우러지게 지어진 수선루는 암벽 틈새로 빛을 끌어들였으며 상부로 휘어진 창방(기둥머리를 연결하는 부재)을 사용하고 바위 틈새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출입구를 조성하였다. 또한, 암벽을 따라 샘물길을 내고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조망 공간을 배치한 안목이 빼어나다.

수선루 지붕의 전면은 겹처마로 전통 기와를 쓰고 후면은 홑처마에 돌너와를 사용하여 지역 건축의 특성을 지닌 채 바위굴 안에 암반과 맞닿은 지붕의 모습을 기막히게 보여주고 있다. 방의 천장은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는데 대들보 위 벽면에는 신선을 연상시키는 흰 수염의 사형제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이, 내부 벽면에는 사계를 표현한 산수화 등 민화가 그려져 있으며 2층 중앙에는 ‘수선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수선루는 자리한 그 모습도 아름답지만, 만들어진 사연도 귀하다. 조선 1686년(숙종 12년) 연안 송씨의 진유와 명유· 철유· 서유 사형제가 효심을 담아 지은 것이다. 송경을 시조로 한 연안 송씨 일가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세거한 가문으로 인근 마을에서 내다보이는 섬진강 건너 바위틈에 부친과 부친 친구들이 신선놀음 하듯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신선처럼 지내며 늙지 않기를 기원하여 지은 누각이기 때문이다.

‘효행’으로 지어진 누각은 훗날 목사(牧使) 최계옹이 우애가 두터운 송씨 사형제가 80세가 되어서도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옛날 중국에서 전란을 피하여 상산(商山)에서 은거한 4신선인 동원공, 하황공, 용리선생, 기리수의 기상과도 같다고 하여 ‘수선루’라 이름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선루(보물 제2055호)와 고지도 속 지형(1872년 지방지도).
수선루(보물 제2055호)와 고지도 속 지형(1872년 지방지도).

이후, 쇠락해진 수선루를 1884년(고종 21년) 후손 송석노가 중수하였고, 을사늑약 때 항의하며 자결한 우국지사 송병선(1836~1905년)이 1888년(고종 25년) 재중수하였다. 당시 송병선은 “송씨 수선루는 진안현 서쪽 산수가 교회하는 곳으로 맑기가 그지없고 볕이 잘 들어 양지바른 곳에 사람들이 올라 먼 곳을 조망하다 보면 기분이 상쾌하여 신선이 되어 오른 듯한 느낌을 얻는 곳이다.”라 쓴 「수선루 중수기」를 남겼다.

수선루 안쪽의 바위에는 ‘송씨 수선루’와 송씨 4형제의 이름을 새긴 글자 등이 새겨져 있다. 그 또렷한 흔적에 더해진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독보적인 건축미와 지역의 특색을 실린 선비문화와 가족 공동체가 지닌 가치를 인정받아 수선루는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물 제2055호’로 격상되었다.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예전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진 수선루의 신선계는 더욱 높아진 것만 같다. 이제는 와유를 즐겼던 선조들처럼 서로의 오래전 여행 사진을 나누며 위로 삼고 견뎌야 할까. 지금의 세상을 초연결사회라 불렀었는데, 이제는 집 문밖을 나서기조차 꺼려지고 여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있어 옆집에 마실 가듯이 다녔던 장소들이 애틋하다.

평안한 어느 날, 광한루원을 찾아 달빛야행도 하고 수선루에 올라 수선루를 노래한 소응천의 시구 따라 가을바람에 문득 늙은 매미 소리를 듣고는 휘돌아 나는 섬진강의 물길에 근심을 흘려보내고 신선처럼 낮잠을 달게 자고 싶다. 그날이 언제일지 아득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린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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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08-28 10:26:06
'진안'하면 마이산 탑사를 우선 떠올리는데 이 코너를 읽다 보면 그곳이 아니더라도 구석구석에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 등 문화재가 많다. 처가가 전주라도 전북에 소재한 문화재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데 이 코너를 통해 생소한 문화재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운 곳에 선조들의 손길이 스며든 곳이 많은데 건성으로 여행을 다니는 행태를 고쳐나가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