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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한국무용가 애미킴 "전주 무대 바탕으로 한국춤의 세계화 이룰 터"
[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한국무용가 애미킴 "전주 무대 바탕으로 한국춤의 세계화 이룰 터"
  • 김원용
  • 승인 2020.08.31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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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한국무용으로 박사 학위, 내공 단단히 다져
창작무용 백제아리랑, 큰 반향에도 단일 공연 아쉬워
젊은 춤꾼 없이 전북무용 미래 사상누각
한국무용가 애미킴 씨가
한국무용가 애미킴 씨가 "한국춤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세림 기자

한국무용가 애미킴(43)은 전주를 무대로 한국춤의 세계화를 꿈꾼다. 단단한 내공을 바탕으로 해서다. 30대 초반 무용단을 이끌고 전국무용제에 전북대표로 출전해 금상을 수상하며 이미 실력을 검증받았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에 중국 유학길에 올라 한국무용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다.

그의 춤 진수는 지난 2017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애미아트에서 발표한 창작무용 ‘백제 아리랑’에서 보여줬다. 이런 춤을 공짜로 볼 수 없다고 자발적인 후원회까지 결성됐다. 애미킴의 공연은 이 때부터 자리예약제와 유료 공연으로 진행됐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유료 공연을 이어간다는 것만으로도 전북무용계에 신선한 바람이었다.

젊은 춤꾼들의 설 무대가 갈수록 좁아지는 엄혹한 현실에서 애미킴이 한국무용의 미래를 어떻게 펼쳐나갈지 궁금했다.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2017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올린 ‘백제 아리랑’작품이 무용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본부터 안무, 공연까지 1인 3역을 한 창작무용이다. 아버지 금파춤부터 중국무용, 내 춤을 녹여낸 작품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에 흐른 찬란했던 백제의 유산을 전주의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사설 무용단으로서 대작을 올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당시 무대예술지원 사업을 받아 무대에 올렸는데, 지원비(1500만원)로 턱없이 부족해 적금을 깨서 제작비에 보탰다. 그만큼 작품에 열정을 쏟았다. 중국틱하지 않느냐, 역사적 허구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하게 만든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1시간 만에 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받았고, 춤으로 어떻게 그리 무한한 상상력과 감동을 줄 수 있느냐는 말에 힘이 났다.”


-백제를 소재로, 전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설 레퍼토리로도 가능할 것 같은데.

“완성도를 더 높여 재공연, 순회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여력이 되지 못했다. 백제문화권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사실 공연 후 입소문을 타고 공주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공연을 위해 최소 50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했더니 고개를 돌리더라.

고향인 전주를 거점으로 한 전주만의 색깔을 가진 전주춤으로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작품인데, 오히려 다행이지 싶기도 했다.(웃음)”


-부친인 금파 선생의 춤을 모태로 하면서 창작무용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

“두 분야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금파춤보존회 이사장으로서 금파춤 보존과 재해석 작업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애미아트 대표로서는 창의적인 춤으로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다. 모두 다 중요한 과제며,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무용의 세계화에 관심이 큰 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몇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8일 금파춤보존회 주최로 마련한 풍남춤락페스티벌 국제안무가전도 그 일환이다. 2006년 출발한 이 페스티벌은 작년부터 국제전으로 바꿨다. 인터넷 등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홍보해서 여러 팀들이 참여 의사를 나타냈으나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본선에 오른 팀마저 경선에 나오지 못해 아쉬웠다.

중국 유학 때 만난 중국 무용가들도 한국춤의 국제화에 든든한 응원군이다. 애미아트 차이나로 불릴 만큼 끈끈하게 연결돼 있고, 실제 여러 작품들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무용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 무대에 올리는 작업도 필요할 것 같은데.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가 춤이다. 국제무용제 같은 곳에 나가서 우리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 춤을 보고 초청하고 싶다는 단체도 있어 기회가 닿으면 해외페스티벌 무대에 나설 생각이다.


-젊은 춤꾼들이 설 무대가 없어 무용예술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현실은 어떤가.

“일반인들의 무용에 대한 관심도가 아주 낮다. 공연 관람객이라야 무용인이나 지인 정도다. 체면치레 관객이다. 대학의 무용학과가 폐지되고, 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릴 길도 많지 않다. 휘트니스 강사, 요가 강사로 생계를 꾸리는 현실에서 무용의 앞날이 어둡다.”


-전북의 경우 무형문화재도 상대적으로 많이 있고, 전통무용 공연도 활발하지 않나.

“원로 무용인들은 탄탄하다. 그걸 받쳐줄 젊은 세대 무용인이 없다. 무형문화재만 하더라도 나이를 따진다. 무용경력이나 실력, 가치 등을 바라보지 않는다. 변질되기 전에 작품을 복원해서 전승 발전시키는 게 문화재 지정의 목적일 텐데 그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전주가 전통을 중시하는 만큼 전주를 소재로 한 창작무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젊은 춤꾼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지역의 무용도 발전할 수 있고 전통춤도 살릴 수 있지 않겠나. ”


-백제아리랑 작품도 그렇지만, 전주 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춤 뿌리인 전주를 어떻게 춤으로 표현할까 항상 고민한다. 복원된 전라감영을 소재로 한 최근 한 무대에 오른 작품을 보면서 솔직히 너무 속상했다. 전통 춤도, 창작 춤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다.

백제아리랑은 큰 규모의 작품이기에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소수 인원으로, 혼자라도 전주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코로나19로 무대활동이 막혔는데.

“올해 중국에서‘공부 잘 했다’고, 전주에서 ‘공부 마치고 왔다’고 각각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었는데 준비 중에 코로나를 만났다. 내년쯤 개인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발표회는 그동안 내가 공부해온 전통무용, 신무용, 민족무용, 창작 무용을 망라할 계획이다.

또 전북문화관광재단의 공연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동화를 춤으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한국무용과 발레 등을 현대무용단과 협업으로 진행한다. 코로나 때문에 야외 행사가 어려워 제작된 내용을 유튜브로 공개할 예정이다. ”


-앞으로 포부는.

“한국춤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유학을 마친 뒤 전주로 돌아와서 외국 무용가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외국 무용가들 중 코로나 이후 자신들과 동행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예술 인지도가 높은 나라의 큰 페스티벌에 한국춤이 소개된 적이 없는 데 내 춤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 애미 킴은

-전통무용과 창작무용 넘나드는‘팔색조’

-금파춤부터 최승희춤, 애미스타일 춤까지

“애미의 무대는 음악과 사람, 춤이 하나가 된다. 관객을 홀린다고나 할까. 살풀이 12분짜리 공연이 1분처럼 금세 지나갔다.”

작년 국제춤페스티벌에 참가한 중국에서 온 무용가들이 페스티벌 개막공연 작품인 애미킴의 호적춤살풀이를 보고 천상의 춤 같다고 극찬했다. 고요하면서도 심금을 울린 마력이 애미 춤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김제 청운사에서 진행된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제에서도 애미 춤은 마력을 보여줬다. 본인은 스스로 감정대로 몸짓했는데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사납고 야무진 평소 무대와 달리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힐링 춤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애미를 보고 ‘팔색조’라는 평이 따른다. 전통무용을 할 때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원숙함으로‘꼭 느네 아버지다’는 평가가 따르고, 창작무용을 할 때는 과감한 변신으로 또다른 애미가 나온다. 살풀이 공연만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무대가 다르고, 매번 새로운 느낌을 던진다.

애미킴의 아버지는 전북 무용을 개척한 금파 김조균 선생이고, 어머니 역시 금파의 춤 동반자로 무용협회 전북지부장을 지낸 김숙 선생이다. 오빠인 김무철씨는 한량무 전북무형문화재 보유자다.

무용가 집안에서 태어난 애미가 춤꾼으로 성장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3~4살 유치원 때부터 춤을 접했으며, 6살 때 모습이 공연 팸플릿에 등장한다. 38년째 춤과 살아온 셈이다.

학교 시절(전북사대부고-경희대) 각종 학생무용제를 석권했고, 32세 때 최연소 전국무용제 금상을 거머쥐면서 안무자 연령 제한이 만들어지게도 했다.

금파 작고 전인 20세까지 선친으로부터 춤 기본과 전통춤을 배우면서 한국춤을 정립했고, 그 후 무용단을 다니면서 바깥춤(창작춤)에 눈을 떴으며, 한국무용의 전설인 최승희에 꽂혀 신무용을 익혔다.

최승희 춤을 배운 재일교포 백홍선으로부터 3년여간 최승희 주요 작품을 사사한 애미는 최승희의 보살춤과 무당춤을 발표해 한국 무용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중국 유학을 통해 중국 여러 민족의 춤을 익힘으로써 그의 춤 레퍼토리가 다양해졌고, 춤세계 또한 그만큼 넓어졌다.

그가 중국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은 <한국궁중무 ‘학연화대처용무’의 합설 연구>. 한·중문화의 연관성을 조명하며 한국궁중무에 담긴 정치·사회적 현상과 의미를 분석한 논문이다. 세계적으로 풀어내고 연구할 수 있는 무용기호학을 동원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왕성한 활동을 꿈꿨던 그에게 코로나19는 여러모로 악재다. 춤추고 가르치고 작품을 만드는 게 사실상 올 스톱되면서다. 유학 전 그가 이끌었던 애미아트가 잠정적으로 해체된 상태다. 중국 강의도 코로나에 막혔다. 코로나가 가져온 많은 변화에 이제 그가 변화로 답할 때다. 그는 자신의 춤과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유튜버 진출도 고려중이란다.

“지금도 피터 팬의 삶을 꿈꿉니다. 세상에 찌들거나 또다른 생각을 하면 재미있는 작품, 순수한 작품이나 나오기 어렵지요. 동화 속마음으로 사회 돌아보고 삶을 들여다보며 살고 싶은데, 철들지 말아야 할 텐데, 코로나가 나오면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철이 드는 것 같아 두려워요.”

 

/김원용 사회문화교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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