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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목사·의사
검사·목사·의사
  • 기고
  • 승인 2020.09.1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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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끄는 몇 개의 전문 직업군이 있다. 검사와 목사, 의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추요, 선망 받는 직업 중 하나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 목사는 영혼의 구원자, 의사는 생명의 치유자로 불린다. 이들이 제 소명을 다하면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 반면 이들이 부패하거나 과도하게 욕심을 내면 우리 사회는 삐걱 거린다. 불행히도 우리는 후자의 사례를 잇달아 목격했다.

우선 검사부터 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 검사들은 적폐청산에 앞장섰지만 자신들의 개혁에는 저항으로 맞섰다. 정의의 사도처럼 비춰졌던 검사들의 대표 윤석렬 검찰총장은 그런 점에서 실망을 줬다. 살아있는 권력인 청와대를 겨눈 칼은 예리한 것 같았으나 핀트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조국 민정수석에게 겨눈 칼은 우리나라 상층부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빗나갔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검언유착이 불거졌다. 채널A 이동재 기자와 윤 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과의 관계는 정치검사와 기레기(쓰레기 기자)간의 유착의 고리가 얼마나 끈끈한가를 보여줬다. 나아가 자신의 장모와 부인 사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이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 등으로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될 처지다.

다음은 목사. 그동안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개신교의 확산과 목사의 위상은 코로나 19 시기를 거치며 실체가 드러났다. 존경 받는 직업이 아닌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는 개독교, 목사는 먹사로 불리고 있다. 코로나 확진환자의 30% 이상이 기독교로 인해 감염됐는데도 대통령과 만난 대표 목사는 “교회를 일반 영업장처럼 다루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더 가관인 것은 괴물 목사 전광훈의 행태다. “하나님, 까불지 마” 하더니 “바이러스 테러로 사기극을 펼친다”며 광화문에서 외장을 쳤다. 그 틈에 바이러스는 더 퍼져 나갔다. 초기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였던 신천지는 온순한 양인 편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교회 목사들의 세습과 횡령, 성범죄는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가 죄송합니다”며 묵은 땅을 갈아엎자는 목사 분들이 있어 그나마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끝으로 의사. 이들은 이번 의료파업을 통해 의사집단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보여줬다. 2000년 의약(醫藥)분업부터 수차례 되풀이된 파업에서 연속 승리를 쟁취했다. 영리하게도 정부가 대항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했다. 그러나 의대학생- 전공의·전임의- 의대교수로 이어진 카르텔 파업은 밥그릇 지키기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잃었다. 물론 사전에 의사단체와 조율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인 정부여당의 조급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176석의 힘을 너무 과신하다 큰 코 다친 것이다.

문제는 의대 증원과 공공성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OECD 회원국보다 의사수가 현저히 적은데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번 의료파업은 역설적으로 의대증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의사들이 특권층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그들은 ‘1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을 원했다.

의대와 비견되는 로스쿨을 보라. 2009년 로스쿨이 생기면서 개업변호사가 8900명에서 2020년 2만3000명으로 2.6배 늘었다. 무변촌이 상당부분 사라지고 직역도 넓어졌다. 마찬가지로 의사수도 대폭 늘리고 의사직역도 넓혀야 한다.

이들 사태는 잘 나가는 전문직들의 사회적 공감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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