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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전북일보로 본 추석 명절 문화 변화상
[추석 특집] 전북일보로 본 추석 명절 문화 변화상
  • 김보현
  • 승인 2020.09.28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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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17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인파가 전주공용터미널에서 버스 창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1986년 9월 17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인파가 전주공용터미널에서 버스 창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온갖 곡식과일이 무르익고 마음마저 풍요로운 한가위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에게 최대 명절로 여겨진다. 온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과 정을 나누는 명절의 의미는 변하지 않지만, 그 방식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전북일보 프레임에 비친 시대별 추석명절 문화는 어땠을까.
 

전북일보 1965년 9월 11일자 3면에 도심 속 문닫은 상가 앞에서 새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어린이들과 성묘에 나선 가족이 한 해의 풍년을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전북일보 1965년 9월 11일자 3면에 도심 속 문닫은 상가 앞에서 새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어린이들과 성묘에 나선 가족이 한 해의 풍년을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추석 대이동’ 방식은 바뀌어도 설레는 귀성길

1950~1960년대 민족 대명절인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 전주남부공동배차장을 비롯한 전북 도심 곳곳의 배차장은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로 붐볐다. 1986년 9월 17일 전북일보 보도사진을 보면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인파가 전주공용터미널에서 버스 창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밀려가는 와중에도 귀성객들은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가용 보급시대인 1980년대 후반부터는 고속도로에서의 전쟁이 시작됐다. 가다가 쉬다가…. 고향을 향해 끊임없이 줄지어 선 자동차 행렬은 연휴기간 단골 뉴스거리였고, 매년 최장 귀성 시간 기록을 경신했다.

1990년대 이후 매년 추석맞이 도로정비가 연례행사였던 한편, KTX가 대중화되면서 귀경길 교통체증을 피해 빠른 철길을 이용하려는 귀성객들이 늘었다. 특히 온라인·모바일 시대인 2000년대에 들어서자 온라인 KTX 예매 경쟁에 불이 붙었다. 수초 만에 매진되길 일쑤였고, 한 번의 클릭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아 새벽 예매를 위해 여전히 역전에 모인 부모님의 모습은 따뜻한 자식 사랑을 상기시켰다.
 

1981년 9월 11일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기 위한 인파들이 전주공용터미널에서표를 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1981년 9월 11일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기 위한 인파들이 전주공용터미널에서표를 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풍성한 장터 구경에서 간편한 택배시대로

추석이 더 신났던 이유는 온갖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라서였다.

1950~1960년대 전북일보 추석연휴 사진을 보면 장터 풍경이 많았다. 햇과일과 햇곡식, 새 옷과 새 신발, 명절에나 살 수 있었던 각양각색의 물건들은 그 시절 추석에나 볼 수 있는 귀한 존재들이었다.

장터에서 사온 풍성한 음식과 선물을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다 보면 어느새 한 보따리. 하지만 묵직한 양 손과 달리 고향집을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던 때였다.

산업화와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뤄졌던 1970~80년대는 백화점으로 배경이 바뀐다. 지금은 사라진 전주 코아백화점은 최상의 쇼핑장소였다. 아이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가 최고인 시대였고, 어머니들에겐 스타킹과 화장품, 아버지들에겐 양주 한 병이 행복이었다.

1990년대 IMF를 기점으로 추석 선물도 양극화를 달렸다. 양 손 전달 대신 택배시대가 도래하며 선물세트 배송이 일반화됐고 상품권 등이 인기를 얻었다.
 

1970년 9월 15일 추석을 앞두고 코리아극장(현재 전주시네마)과 제일극장 앞 도로 한복판에양쪽 전봇대를 기둥 삼아 영화간판이 걸려 있다.
1970년 9월 15일 추석을 앞두고 코리아극장(현재 전주시네마)과 제일극장 앞 도로 한복판에양쪽 전봇대를 기둥 삼아 영화간판이 걸려 있다.

△극장가 호황부터 추캉스 확산까지

풍류의 고장 전북, 영화의 도시 전주답게 1970년대에도 추석연휴 극장가가 호황을 이뤘다.

당시 전주에는 전주극장, 코리아극장, 제일극장, 시민극장, 아카데미극장, 중앙극장 공보관, 시민문화관 등이 있었다. 전북일보 DB에는 1970년 9월 15일 추석을 앞두고 코리아극장(현재 전주시네마)과 제일극장 앞 도로 한복판에 양쪽 전봇대를 기둥 삼아 영화간판이 가로질러 있을 때 찍은 사진이 기록돼 있다. 광고판에는 추석 특선 영화인 ‘십삼인의 무사’가 걸려 있었다. 초대형 스크린에 총천연색이라는 점도 함께 소개돼 있다. 당시 관람객들은 간판만 보고 상영되는 영화에 관한 정보를 얻곤 했다.

대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 뒤 전통놀이, 추석명화 감상 등 오락거리를 즐기던 시대가 지나고, 1990년대부터 핵가족 시대가 도래했다.

추석 당일 극심한 교통혼잡을 피하기 위해 휴일을 이용해 미리 성묘하는 추세가 확산됐다. 추캉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명절연휴 고향대신 공항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추석문화의 변화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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