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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거듭 겹치는 아이러니 양산의 시대
모순이 거듭 겹치는 아이러니 양산의 시대
  • 기고
  • 승인 2020.09.2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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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위렌이란 사람은 시(詩)를 ‘아이러니의 화염’이라 했다. 또 호프만 콤이란 사람은 시란 ‘모순의 불꽃’이라 했다. 두 주장은 서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시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이 말을 필자는 모순과 모순의 화해 쯤으로 변용(變容)해 보았다. 부딪치고 대질린 것들의 화융, 다른 속성을 지닌 것들의 통일된 본질 찾아가기 쯤도 이에 부합하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대립과 대칭하는 사상(事象)들이 조화와 합일로 나아감을 일컫는 말일 터이다. 이 때에 상기되는 말로 앙상블이란 말이 있다. 이 어휘는 음악에서 여러 악기가 중주되어 조화로운 화음을 낸다는 말인데, 조화의 의미는 예술에서 심경적·정서적 통일을 뜻하기도 한다. 사회 관계에서도 앙상블은 매우 긍정적 개념으로 활용된다.

시가 아이러니의 화융이라 할 때,그 피사체 대상은 상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 모순된 미래 환상을 끌어다 대칭시키고 화해로 이끎을 말한다. 이에 비교하여 신문 기사는 현실을 직시하거나 현시적 사항을 적시하여 이를 널리 알리며 선목적 지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사명이 있다고 보는데, 기사가 미래 예측 상황을 미리 끌어다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불손한 악의가 숨어 있다고 본다. 신문 기사가 현실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를 근거로 유추해 나가는 글이라면 그 문장이 아무리 미사여구로 또는 현학적으로 도배됐어도 화융을 분쇄하는 빌미의 악문일 게 분명하다. 모순을 치유하는 것이 예술이든 철학이든 그 본질면에서는 같다고 본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정반합(正反合)의 이론일 터이나 모순의 극복에 그 지향점을 두어야 마땅하다. 신문은 민중의 숨결이다. 따로 아가미로 숨 쉬는 그런 기사는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자연 재해가 겹쳐 오는 양을 머피의 법칙이라 일컫는다. 그 재앙이 겹쳐 오는 현 시국을 인위의 그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성인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미증유의 질병 코로나19 시대에 처해 있다. 이 땅의 예술도 이 환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북예총이 행사하는 여러 발표도 무관중 비대면으로 치르므로 무한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객 없는 예술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인가? 이 때에 영상 매체를 이용한 유튜브, 온라인 등의 방식을 끌어 쓸 수밖에 없다. 지금 전북예총은 그렇게 운영된다. 보수적 예술체계가 가장 진보로 비약하고 있는 셈이다. 모순의 극복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씁쓸한 입맛이다. 그런데 첨단 기술이 준비 단계에서 미숙했다고 혹독하게 ‘졸속 추진’으로 명명해 버린 경우는 몰상식에 가깝다.

도민을 위한 도민에 의한 도민의 예술이 우리가 선목적하고 공동선하는 공리적(共利的) 예술행사인데 무참히 가치 폄하를 선언해 버린 처사가 도민의 숨통을 코로나 마스크보다 더 심각하게 막는 처사이다. 졸속 추진된 예술 발표를 누가 시간 낭비하여 관람하겠는가? 거창하게 말하면 혹세무민인 셈이다.

와서 관람하면 좋으리라 여겨진다. 졸속 예술제인가? 그리고 유튜브로 보고 들으면 감동 받으리라 생각된다. 전북 예술의 발전된 모습을…. 그리하여 이 삭막한 시대에 정서적 여유도 좀 찾기를 소망한다. 인류의 궁극의 삶 목적은 예술의 향유에서 그 이유를 찾아라 했다. 우리 예술이 미약하다면 창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후원하고 응원도 많이 해 주면 좋겠다. 이 바람은 간절하고 또한 절실한 것이다.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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