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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역경 이겨내며 강해지는 거란다”
[추석 특집] “역경 이겨내며 강해지는 거란다”
  • 강인
  • 승인 2020.09.28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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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위기 속 삶의 지혜
오규삼 전 완주부군수가 지난 19일 전주 덕진공원에서 외손자 허영민 군과 산책을 하며 인생담을 들려주고 있다.
오규삼 전 완주부군수가 지난 19일 전주 덕진공원에서 외손자 허영민 군과 산책을 하며 인생담을 들려주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구촌이 혼란스러운 시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3월 전염병 경보 최고 등급인 팬데믹(Pandemic·6등급)을 선포했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며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며 불특정 다수가 불안함과 우울증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발생할 지경에 이르렀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사적 사건들과 모진 세월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버텨온 어른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인터뷰는 사진 촬영할 때를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같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진행됐다)

 

“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내며 강해지는 거란다.”

오규삼(70) 전 완주부군수가 자신의 외손자인 허영민 군(16)에게 전하는 말이다.

오 전 부군수는 현재 전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도 결국 이겨내고, 나아가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비책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온라인 영상 계통 전문가를 꿈꾸는 영민 군은 요즘 들어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야외활동을 하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돼 오프라인 수업 대비 공부 효율이 떨어진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손을 들어 질문을 해야 하지만 온라인 수업에서는 힘든 일이다. 온라인 수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쏟아지는 과제도 부담이다. 무엇보다 야외 활동이 제한돼 체육활동이 불가능하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버티면 다시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온다고 다독였다.

오 전 부군수는 1969년 9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해 2010년 퇴직 때까지 42년 간 공직에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편하게만 보이는 공직생활도 실상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8남매 중 장남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무엇 하나 넉넉했던 적이 없었다.

일흔이 된 종심(從心)의 나이지만 아직 95세 노모를 모시고 있다. 인터뷰 중 도내 한 대학병원 센터장으로 재직 중인 막내 동생을 자랑스레 이야기 할 정도로 가족애가 남달랐다.
 

오규삼 전 완주부군수와 외손자 허영민 군.
오규삼 전 완주부군수와 외손자 허영민 군.

그는 그간 겪은 많은 역사적 사건 중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을 가장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정읍군청에서 근무하던 그는 군사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총칼을 앞세워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 신분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해서 시위대에 합류하지 못하는 고통도 컸다. 시가지를 빠져나가는 도로를 차단하고 시위를 진압하는 군인들의 행렬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세상을 울리고, 이를 제지하는 군부의 진압봉이 매서웠지만 행정업무는 멈출 수 없었다. 혼란한 시기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해야 했다. 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한 군부의 권력이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결국 종말을 맞았다. 모두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로 만들어진 결과다.

오 전 부군수는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격동의 시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행정업무도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당시에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반면 좋은 날도 있었다.

그는 노사 갈등을 이겨내고 국비까지 확보해 해외공연까지 할 수 있었던 전북도립국악원장 시절을 가장 보람있게 기억했다. 2004년 전북도립국악원장으로 자리했을 때 국악원은 노사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 전 부군수가 나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풀어갔다. 한 번 터진 대화의 물꼬는 소통으로 이어졌고, 화합의 결과를 만들었다. 조직이 화합을 이루니 성과도 따라왔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문화 사업은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화합의 힘으로 국비예산을 받았고,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해외 공연까지 나갈 수 있었다. 외교부 지원으로 중남미 3개국에서 국악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돌이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실력은 출중한데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당시 문화예술 예산보다 몇 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걸어온 길을 진지하게, 때론 웃으며 말하던 오 전 부군수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국민이 불안과 고통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도 버티다보면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모두가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자신의 편의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결국 코로나라는 큰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퇴직 후 오히려 공직생활이 그립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영민 군의 손을 잡고 어깨를 다독이며 밝은 미래를 이야기 했다.

인터뷰 말미 영민군은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께서 받은 상패가 많은데, 그것만 볼 때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느끼지 못했다. 오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니 다른 느낌이다. 새삼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 전 부군수는 “우리 영민이가 공부도 잘 한다. 지금 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영민이를 비롯한 미래 세대가 더 좋은 세상을 살기 바란다.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며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오규삼 전 완주부군수는 전북도립국악원장, 전북도 관광진흥과장, 전북도의회 행정자치전문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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