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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어느 운명론에 대하여
[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어느 운명론에 대하여
  • 기고
  • 승인 2020.10.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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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곧 불교의 화두와 같다. ‘이 무엇고?’라는 물음은 삶의 길을 개척하는 물음과 같다. 운명은 본질적 물음 앞에서는 변형 가능한 문제로 바뀐다. 사진은 장석원 작품 ‘이 무엇고?’
삶은 곧 불교의 화두와 같다. ‘이 무엇고?’라는 물음은 삶의 길을 개척하는 물음과 같다. 운명은 본질적 물음 앞에서는 변형 가능한 문제로 바뀐다. 사진은 장석원 작품 ‘이 무엇고?’

인간의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운명론에 대하여 쓴 글을 보면, 광주교도소에서 만난 최평숙 도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한국일보 창업주 장기영씨의 서거를 맞힌 것을 비롯해서 임헌영이 언제 출소할지를 대략 맞췄다고 한다. 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 분실 사람들도 번번이 그를 불러 운명을 상담해 만세력 한권만 들고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사주로 정해진 운명과 그 기운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운명론, 감옥 안에서 친해진 도사의 말을 빌려 피력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아버지께서 서울 출장 중 대전의 유명한 사주 도사를 방문해 식구대로 사주를 받아온 것이 있었다. 신통하게도 사주에서 말하는 해에 나는 취직하게 되었고 그것이 정한대로 대체적인 생의 사회적 굴곡이 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한 일이 있었다.

기실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희생을 다하지 않으면 이루기 어렵다. 각고의 노력 끝에 뜻을 이루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 그 과정에서 추락하거나 방향 전환이 불가피한 경우를 겪기 때문이다.

경허 선사의 얘기를 쫓다보면, 문둥병 걸린 한 여인을 대웅전에 모셔놓고 목욕도 시키고 극진히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 여성은 과거에 왕비였고 당시 온갖 영화를 누렸기에 지금 문둥병으로 고생하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지금 누리는 부귀영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후세에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운명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짜가 없다는 것, 사주가 잘 나서 호의호식을 누린 사람은 내세에 빈천하게 태어나서 온 몸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 우주의 돌고 도는 기운은 거짓 없이 정확하게 그 반환을 요구한다. 운명의 고리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차원을 달리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용서하고 집착을 끊으며 더 나은 정신성, 온 몸으로 헌신할 수 있는 봉사, 희생… 등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다. 제대로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 길 낭떠러지를 몇 번이고 굴러야 한다. 그것이 쉽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사는 한, 그 운명론을 넘어서 우뚝 서는 길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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