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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4) 한과 절망을 ‘속울음’으로 풀어낸 시인, 정열(鄭烈)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4) 한과 절망을 ‘속울음’으로 풀어낸 시인, 정열(鄭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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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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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鄭烈) 시인.
정열(鄭烈) 시인.

정열(鄭烈) 시인은 1932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교촌 마을에서 태어났고 1994년 작고했다. 시인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쓴 향토 시인이다. 시인이 청년이었을 때까지는 석유 호롱불을 밝혀놓고 밤이 깊도록 명상에 잠겨 작품을 써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시인은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가와 관계없이 오로지 외길, 묵묵히 시의 길을 걸어간 분이기도 하다.

시인은 동진강변의 너른 들판에서 5대째 살아왔고 삼대독자 가문에서 6.25 전쟁 때 오직 한 분밖에 없었던 형님을 빼앗긴 분노와 슬픔 때문에 문학의 세계에서 더욱 더 빠져들게 되었다. 시인은 “내 시는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영영 풀리지 못한 채 응어리진 핏덩이거나, 한밤중에 반딧불이 같은 호롱불 앞에서 반쯤 석불(石佛)이 되어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던 어머니의 속울음’이라고 했다. 시인은 이처럼 평생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삶 자체가 커다란 고통이고 번민의 연속이었다. 또한, 시인이 살았던 곳은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든 갑오농민운동의 한복판이었으니 때로는 핏발 선 눈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한 시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시인의 문학은 이렇듯 그의 태생적 삶과 밀접했다. 시인이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한 것은 1948년 전주상고에서 문예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1962년 국학대학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 『문학예술』에 「산」이, 이듬해 「묵도(默禱)」로 추천을 받았고, 1959년 『사상계』에 「얼굴」, 「무화과」 ,「꽃」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원뢰(遠雷)』(1961), 『바람들의 세상』(1976), 『어느 흉년에 』(공저, 1982)가 있고, 시선집으로는 『할 말은 끝내 이 땅에 묻어두고』(1985)가 있다.

시인의 원래 이름은 ‘정하열(鄭夏烈)’이었고 ‘정열(鄭烈)’은 그의 필명이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 필명을 쓴 것으로 보인다. 1956년에 발행한 <문학예술>에도 이 필명으로 작품이 발표되었다. 이에 대하여 전북 문단사를 정리한 최명표 문학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본명 ‘정하열(鄭夏烈)’에서 ‘여름(夏)’을 지워버리고 ‘정열(鄭烈)’로 필명을 삼았다. 아마 ‘여름’이 정열(情熱)의 계절이고, ‘녀름’이 그 여름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며 중첩된 의미를 삭제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게으름을 부추기거나 겨르로운 호흡을 요구하는 여름의 의미망에 부담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정열(鄭烈) 시인은 ‘운월(雲月)’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점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필명은 줄임이 아니라 없앰이다. 그는 ‘여름[夏]’을 지워서 시인의 ‘정열’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최명표, 『전북작가열전』(신아출판사.2018))

시인은 1953년 『자유신문』에 그의 작품이 당선되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1955년부터 『문학예술』이라는 잡지에 박남수, 조지훈 등의 추천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3회 추천을 받아야 등단하게 되어 있어서 시인은 3회 추천 작품과 당선 소감문까지 출판사로 보냈지만, 공교롭게도 『문학예술』이 폐간되는 바람에 등단하지 못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시인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59년 11월호 『사상계』에 시 당선으로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당시 『문학예술』에 조지훈 시인의 추천을 받은 「묵도(默禱)」라는 시를 소개해 본다.

 

여기는

담(潭) 우에 뜬 연잎보다 좁은

섬이 아닙니까

 

천년을 두고 달려도 달려도

해안선이 보이지 않은 뻘밭이 아닙니까.

 

성좌(星座)로도 이름을 다 헤아릴 수 없는

목숨들이

얼마나 미움을 향하여

꽃을 흔들다가 쓰러져 간 수자리입니까

 

여기는 병(甁)속이 아닙니까

 

시시로 바람같이 이는 당신의 한숨과

나의 오열(嗚咽)을

푸른 침묵으로 휩싸는 병(甁)속이 아닙니까

-<중략>-

한해......두해......서른해

이루 다해도 모자라는 평생을 두고

가시가 돋는 인종(忍從)의 징역살이를

 

말 없는 기도의 푸른 향연(香煙)이 피어오를 것입니다.

달밤 해바라기와 같이

안으로 웃어 눌르는 기도(祈禱)가

- 정열「묵도」(1956) 전문-

 

이 시에는 우리의 불행한 역사가 드러나 있다. 서로 미워하다가 쓰러져간 곳에서 참회하고 거듭나야 함을 기도하는 시인의 마음이 묵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이 땅에 얼룩진 오욕(汚辱)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였다.

정열(鄭烈) 시인의 작품 경향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 ‘속울음의 시인’이라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은 시인이 한평생 고향을 지키면서 시작 활동을 했다 하여 ’농민 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내면의 한을 표출한 ’민중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은 외부의 어떤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의 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릴 수도 있다. 시인의 제자 주봉구 시인은 정양 시인이 말한 ’속울음의 시인‘이 가장 근접한 평가라고 밝힌 바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시집 전편에 관통하는 시어가 바로 ’속울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쪽 눈깔을 잃고 수자리에서 돌아온 한 사나이가

거울 앞에 앉아 수염을 깎는다.

 

이미 치열이 식은 지구보다 더 많은 균열을 품은 얼굴

 

그 중심에서 산맥이 무너지는 소리가 일른다.

바닷물이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선혈이 흐른다.

살구꽃이 핀 마을들이 탄다.

봄꽃 속에서 사나이의 눈깔이 뛰어오른다.

 

언제부터인가 거울 뒤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다.

 

사나이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 남은 한쪽 눈을 마주 감는다.

뒤집힌 바다

하늘을 물어 흔들다가 천길 가라앉은 수심같이 한없이 맑은 거울 속에 지금 전쟁이 살다가 폐허가 누워 있다.

-「얼굴」 전문-

 

이 시는 전쟁터(수자리)에서 한쪽 눈을 잃고 돌아온 사나이가 거울 앞에 앉아서 수염을 깎고 있는데,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하다. 전쟁의 광풍으로 산맥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선혈이 낭자하고 마을이 타고, 불꽃 속에서 눈알이 튀어나왔다. 전쟁의 처참한 모습을 이처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거울 뒤에 울고 있는 소년은 누구인가. 바로 6.25 전쟁으로 하나뿐인 형을 잃어버린 정열(鄭烈) 시인의 모습이 아닐까.

시인의 시에 대한 찬사는 끊임이 없었다. 박남수 시인은 ”개인의 내면적 표현을 위한 서정의 언어, 인식과 감각의 결합을 극대화한 실험”이라고 평가하였고, 신적정 시인은 ”다가올 내일이 우리의 해어진 옷자락을 헛되이 스쳐 갈 바람결이 아닐진대, 십 년을 닦달한 멍든 역사의 한 자락을 넘기는데 서슴없다’라고 했으며, 정양 시인은 “가난, 전쟁, 분노, 병마 등, 사회악의 부정에서 오는 좌절감을 노래”했다고 했다.
 

김제 시민공원에 세워진 정열(鄭烈) 시인 시비.
김제 시민공원에 세워진 정열(鄭烈) 시인 시비.

정열(鄭烈) 시인은 석정문학회에 가담하여 전북 문단의 시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김제문학회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시 「바람소리」가 새겨진 시비가 김제 시민공원에 있다. 정열(鄭烈) 시인! 그는 선대가 물려준 고향에서 우리 문학을 풍성하게 일궈냈다. 그의 고향, 정읍에서 외롭게 문학의 길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고향을 노래한 시 「비」를 소개한다.

 

서래봉도

내장산도

이 땅의 산하는

모두 비에 젖는다.

 

백제의 마지막 여인

속울음이 굳어간 망부석도,

녹두장군의 피진 고함소리도,

부처님께 염불하시는 노스님도,

우산을 받은 가난한 시민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거지도

모두 모두 다 비를 맞는다.

 

안방에도 비가 내리고

뜨락에도 비가 내리고

벌판에도 비기 내리고

강에도 비가 내리고

비는 검푸른 바다로 일어서서

젖은 땅을 또다시 두루 덮는다.

 

세상이

몇 번이나 석 바뀌어야

이 산하에 비가 그칠까...

이땅에는

그냥 비가 내린다.”

 

시인은 그는 지금도 묘지에서 비바람에 맞서며 자신의 살붙이와도 같은 고향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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