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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5)가보에 담긴 효행의 흔적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5)가보에 담긴 효행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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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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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 정씨 상서고문서] 병풍과 족보
[효부 정씨 상서고문서] 병풍과 족보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물건을 ‘가보(家寶)’라 한다. 2019년 TV 프로그램인 ‘진품명품’에 특별한 사연이 담긴 가보가 의뢰품으로 소개되었다. <효부 정씨 상서 고문서>라 이름 붙은 병풍으로 조선 시기 용안현(현 익산시 용동면)에 살던 동래 정씨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다.

 

동래 정씨는 18세 때 전주 이씨 완창대군파 경양군손인 이순면과 혼인하여 줄곧 용안현에서 시부모를 봉양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효부 정씨로 불렸다. 병든 시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모신 그녀의 이야기는 “전주 이씨의 사람이 혼인했는데 그 부인이 동래 정씨라는 사람이었다. 여러 번 표창이 있었으나 시기가 흐르고 사정이 변해서 왕의 표창은 받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전주 이씨 족보에도 남아있다.

 

족보에서도 왕이 내린 큰 상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엿볼 수 있듯이 당대 효부 정씨의 효행에 감동한 지역의 사람들이 여러 차례 큰 상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상소문을 귀히 여긴 전주 이씨 집안에서는 이를 가보로 삼아 대대로 물려주었는데 그 후손인 이강재(1941년생)가 1970년대에 병풍으로 제작하였고 지금은 아들인 이종길(1971년생)이 간직하고 있다.

 

집안의 제사에 펼쳐 놓고 사용하는 병풍에는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며느리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서 시어머니께 먹여 병을 낫게 했다는 사연이다. 지극한 효행의 전설이자 지금 시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국 명나라 출신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 인체의 각 부위에 대한 약효가 설명되어 있어,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한 효행으로 더러 있었던 일이라 한다. 말로만 전해 듣던 그 사연이 실재했다는 증거가 1854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6장의 상소문에 자세히 담겨있다.

 

첫 번째 상소문의 내용에는 정씨의 효행이 소개되어 있다. “용안현 비야동(지금의 비야마을)에서 살았던 효부 정씨의 시어머니가 가래가 끓고 지금의 천식과도 같은 담증을 한 달이 넘게 앓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고 심지어 대변을 맛보게 하며 하늘에 빌고 정성을 다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 병세가 위독해지자 자신의 왼쪽 넓적다리 살을 칼로 잘라 국을 만들고 약에 타서 마시게 하자 기력을 차린 시어머니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당시 기적 같은 사연을 접한 지역의 사람들이 효부 정씨를 칭찬하면서 관아에 공동으로 상소문을 올렸다. 지역의 유림들을 비롯한 많은 유력인사들이 그 내용을 익히 듣고는 공을 인정하고 효부 정씨에게 상을 내릴 것을 청했다. 그럼에도 큰 상을 내리지 않자 몇 차례에 걸쳐 내용을 더하고 청원하며 상소를 올린 것이다.

 

“마침내 이어가기 어려운 목숨을 소생시켜 조금 다시 살아나는 효험이 있었으니 어찌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응시켜 그러한 것이 아니겠나이까! 이는 실로 열녀전 가운데도 드물게 보이는 지극한 효도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포상을 내리는 은전을 입지 못한 까닭으로 고을의 사론이 오랫동안 억울하게 여겼습니다... 수의께서 처분해주소서!”

 

상소문에는 자신들의 이름과 직함을 써 직접 추천함을 증명한 흔적이 빼곡히 적혀있다. 당시 직함을 착함(着銜)이라고 부르고 지금의 서명 사인을 수결(手決)이라 했는데, 이 착함과 수결이 같이 있어야 진짜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성명 또는 직함 아래에 도장 대신 자필로 써야 본인과 연결이 된다. 특히 한 일(一)자를 그은 위에 마음 심(心)과 그림 같기도 한 지금의 사인이자 서명이 나름의 부호 같은 조합으로 독특하게 적혀있어 눈길을 끈다.

 

상소문을 올리면 기관의 장이 결재하게 되는데, 세 번째 폭에는 순찰사가 서명한 것으로 인장이 찍혀있고, 순찰사 중에서도 높은 도순찰사의 사인으로 도읍 도(都)에 순찰사의 사(使)자를 형상화해서 멋들어지게 적은 것이 보인다. 특히, 다섯 번째 폭에는 ‘암행어사’라는 직함 끝에 마패 직인이 찍혀있고 ‘30일’이라고 날짜가 표기되었다. 이를 보아, 암행어사가 읽어보고 30일 날 처리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암행어사도 감동한 효행이지만 “매우 가상하다.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더욱 논의해야 할 일이니, 공적인 의논을 좀 더 해서 소문이 무성하게 하도록 기다려라. 내가 지금 결정하기에는 섣부르다”라며 아쉽게도 때를 기다리라 이르는 내용과 암행어사를 증명하는 마패를 찍었다. 마지막 폭에는 주인공 부부에 관한 내용이 있어 한 가문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 효행을 다한 사실이 거듭 담겨있다.

 

방송을 통해 조명된 사연은 가문의 자랑이 된 효행을 널리 알렸고, 고문서를 병풍으로 꾸며 제사 때 선조를 추모하고 활용하는 사례로 선보였다. 또한, 효부 정씨의 흔적이 어린 지금의 용동면 비야마을은 인근 고창마을에 전해지는 단지에 피를 내어 아버지를 소생시킨 ‘효자 이보할지’의 사연과 함께 효의 터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 정신을 이으며 익산시는 ‘효 문화도시’를 조성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일반적인 날들은 물론이고 명절마저도 서로 손을 맞잡으며 가족의 정을 나누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가을이 깊어가고 찬바람이 부는 시기 가문의 자랑에서 빛나는 지역의 자산이 된 효행의 흔적이 더욱 크고 숭고하게 다가온다.

익산 용동면의 효문화자원
익산 용동면의 효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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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0-10-18 07:52:25
동래정씨 효부에 대한 병풍내용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나 과거 효부상 등에 전해 내려운 내용에도 있는 며느리들의 끝없는 희생과 봉사가 돋보인 내용입니다.ㆍㆍ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