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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에 비친 전북 70년사] ② 1970년대 : 교통혁명의 양면…호남고속도로 개통과 이리역 폭발사고
[전북일보에 비친 전북 70년사] ② 1970년대 : 교통혁명의 양면…호남고속도로 개통과 이리역 폭발사고
  • 김보현
  • 승인 2020.10.19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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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된 이리역 =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께 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파괴된 현장을 항공 촬영했다.
아수라장된 이리역 =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께 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파괴된 현장을 항공 촬영했다.
우편번호 시행 = 1970년 7월 1일 전국적으로 시행된 우편번호 520번을 알리기 위해 우편우송차량과 집배원들이 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우편번호 시행 = 1970년 7월 1일 전국적으로 시행된 우편번호 520번을 알리기 위해 우편우송차량과 집배원들이 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호남고속도로 개통 = 1970년 12월 30일 호남고속도로 전주~대전간 79.1km가 개통했다. 사진은 전주IC 모습.
호남고속도로 개통 = 1970년 12월 30일 호남고속도로 전주~대전간 79.1km가 개통했다. 사진은 전주IC 모습.
김대중 후보 유세 = 1971년 4월 17일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전주고 교정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김대중 후보 유세 = 1971년 4월 17일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전주고 교정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역전의 명수’군산상고 = 1972년 7월 20일 제26회 전국 황금사자기 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군산상고 야구부가 부산고를 5대 4로 이기는 극적인 역전승을 펼쳤다. 선수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역전의 명수’군산상고 = 1972년 7월 20일 제26회 전국 황금사자기 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군산상고 야구부가 부산고를 5대 4로 이기는 극적인 역전승을 펼쳤다. 선수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진안 곰티재 주막집 = 1972년 11월 4일 새로운 모래재가 개통되면서 그동안 차량이 통과했던 곰티재 주막 앞을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진안 곰티재 주막집 = 1972년 11월 4일 새로운 모래재가 개통되면서 그동안 차량이 통과했던 곰티재 주막 앞을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완주 비봉탄광 매몰사고 = 1975년 4월 19일 완주군 비봉면 비봉탄광이 무
너지는 사고가 났다. 인부 2명이 130미터 갱도에 갇혔다가 50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전북 유일한 탄광이었으며 왜정때부터 운영, 해방 후 폐광됐다가 1962년 다시 시작해 1987년에 인부가 없어 폐관됐다.
완주 비봉탄광 매몰사고 = 1975년 4월 19일 완주군 비봉면 비봉탄광이 무 너지는 사고가 났다. 인부 2명이 130미터 갱도에 갇혔다가 50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전북 유일한 탄광이었으며 왜정때부터 운영, 해방 후 폐광됐다가 1962년 다시 시작해 1987년에 인부가 없어 폐관됐다.
1977년 11월 16일 이리역 폭발사고 범인 신무일 씨가 경찰관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범행현장으로 가고 있다.
1977년 11월 16일 이리역 폭발사고 범인 신무일 씨가 경찰관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범행현장으로 가고 있다.

 

전북지역에서 1970년 12월말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전북 산업화를 앞당겼다. 전북일보는 1971년 1월 1일 신년호를 통해 “교통혁명이자 육로발전의 거울인 고속도로는 곡창지대인 호남벌판을 가로지르며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었으며, 전주와 서울 간 거리를 종전 5시간에서 3시간 30분으로 당겼다”고 밝혔다. 호남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교통 불편해소, 기업 지방 투자, 농산물시장 확대 등의 기대를 모았다.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께 발생한 이리역 폭발사고도 잊을 수 없다. 이날 월드컵 축구 한국 대 이란전이 열리고 있던 시각이었다. 폭발물 관리 소홀로 인해 적재 열차가 폭발하면서 이리역 일대에서 사망자 56명, 부상자 1300여 명, 이재민 1만여 명이 발생했다. 이리역 참사로 인한 간접 보상적 성격으로 정부는 이리공단 확장을 추진했다.

이밖에도 우영수 작가의 전라도 폄하 원고 <문학사상> 게재 사건, 전북애향운동본부 범도민 투쟁기구 발족 등이 발생했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역전의 명수’로 떠오르며 한국 고교야구사에서 별로 떠오른 시기가 바로 1970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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