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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老)가수 나훈아
젊은 노(老)가수 나훈아
  • 기고
  • 승인 2020.10.20 20: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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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는 봄·가을로 소풍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가까운 명승고적이었다. 당시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골에서 소풍날은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모처럼 해방된 기분인데다 김밥이며 과자, 사이다 등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다.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의 단골 행선지는 백양사였다.

소풍날 비포장도로를 걸을 양이면 다리도 아프고 희뿌연 먼지를 마셔야 했다. 그래도 소풍은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열린 학급별 장기자랑이었다.

4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장기자랑에 우리 반 대표로 반장이 나가서 빅히트를 쳤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그 친구는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반짝이는 별 빛 아래 소근 소근 소근 대는 그 날∼밤, 천년을 두고∼”하는 노래가 끝나자 환호성과 함께 앵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 친구는 다시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 나∼라”하는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친구가 부른 노래는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과 김용대의 ‘청춘의 봄’이었다. 당시 동요만 배우던 나는 깜짝 놀랐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 했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트로트와의 만남은 그때 시작되었다.

사실 트로트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서민들을 어루만지는 약손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일부에선 촌스런 뽕짝이라고 폄하하지만 대중의 애환을 그만큼 직설적으로 대변한 음악도 없다. 오랜 멸시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트로트는 최근 방송가를 장악했다. TV를 틀면 먹방이더니 이제는 트로트 세상이다. 이러한 트로트 열풍에 화룡정점을 찍은 일대 사건이 지난 추석 KBS2 TV가 기획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아니었나 싶다. 2시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친 이 공연은 전국 시청률 29.0%라는 드문 기록 뿐 아니라 트로트를 서정시와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중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젊은 노인가수 나훈아의 활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73세(1947년생)의 나이에도 다이나믹한 무대로 코로나에 지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압도적인 무대스케일에다 한복과 찢어진 청바지까지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며 29곡을 열창했다.

전형적인 욜드(Young Old 젊은 노인)요, 액티브 시니어였다. 욜드는 노인 대국인 일본에서 만든 말로 1946-1964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더 건강하고, 돈도 있고, 고학력이다. 또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에도 익숙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한국에는 2020년 6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아무나 나훈아 같은 젊은 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나이와 함께 실력을 갖춰야 한다. 트로트 가수를 예로 들어보자. 요즘 뜨고 있는 젊은 가수들은 기교는 뛰어날지 몰라도 덜 숙성된 느낌이다. 나훈아의 공연은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이 묻어나 ‘이것이 가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이 들어서도 탄탄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사회 공헌적 활동이다. 아마 이번 무대가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공연이었다면 큰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더하여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테스형’이나 이날 부르지는 않았으나 광주 5·18을 소재로 만든 ‘엄니’ 같은 노래는 사회의 아픔을 껴안고 있다. 단순한 예인이 아닌 연륜 쌓인 시대의 어른으로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나훈아의 공연은 급증하는 젊은 노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 것 같아 흐뭇했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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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2020-11-02 16:21:33
요즘 종편방송에서 띄우는 트로트 가수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기교만 있고 깊이가 없다
실력은 없으면서 겉멋만 들었다 이런가수들은 오래가지못한다
영어책 원서 한페이지 제대로 읽지못하면서 짧은 회화만 할줄아는 사람들의 브로큰 잉글리쉬같다
아마추어가 듣기에 대단해보이지만 실력은 얕다
나훈아, 80년대 김연자, 김수희, 김태정 같은 가수들은 정말 깊이가 있고 호소력이있다
마치 판소리처럼 꺽기와 저음의 울림이 출중하다
심수봉같은 가수들은 작사작곡능력도 갖춘 훌륭한 가수다
젊은가수중엔 장윤정은 타고난 실력이 출중하다
가수는 연습도필요하지만 실력은 타고나는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