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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땅,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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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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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다가서기

독도 /사진 = 픽사베이
독도 /사진 = 픽사베이

 다가오는 10월 25일은 올해 120주년을 맞는 ‘독도의 날’이다. 독도는 현재 우리나라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고 과거 수많은 역사서와 고문서에도 기록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다. 하지만 일본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 주장하며, 교과서를 통해 왜곡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독도 인식에 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땅인지 그 근거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독도가 왜 우리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배우는 데 소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우리 것을 지키는 첫걸음이 아닐까? 이번 시간에는 독도를 다룬 기사들을 통해 독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주제 관련 신문기사

소년한국일보 2017년 10월 24일, 2019년 10월 21일 독도가 한라산보다 높다?

중앙일보 2017년 3월 8일, 일본의 ‘독도 망언’ 왜

소년한국일보 2019년 4월 10일,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 역사 왜곡

어린이동아 2018년 10월 25일, 우리 땅은 우리가 지킨다

 

신문 읽기

<읽기자료 1>

독도가 한라산보다 높다?

약 25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겨… 해수면 기준으로 국내 최고봉

근해 수심 1500m 지역에 불타는 얼음 ‘하이드레이트’ 6억 톤 매장

 

■ 독도는 어떤 섬?

약 450만 년 전부터 250만 년 전 사이에 바다 깊은 곳의 화산 활동으로 생겨났다. 독도는 한마디로 바닷속의 큰 산이다. 해저 바닥의 지름이 24km나 되는 거대한 원뿔 기둥 형태를

띈다. 그 크기가 울릉도의 2배에 이른다. 독도 정상 부근은 평탄한 고원 형태로, 직경은 9.4km. 동도와 서도는 이 고원에서 뾰족하게 튀어 오른 두 개의 봉우리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한라산, 울릉도의 성인봉, 독도 중 어느 산이 가장 높을까?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라산이 첫째다. 하지만 바다 밑바닥에서부터 산 정상까지의 높이를 보면 독도가 가장 높다.

독도 주위는 89개의 작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총 면적은 18만 7554㎡로, 대략 축구장 30개 넓이다.

한편, 독도는 울릉도에서 남동쪽으로 87.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삽화) 반면에 일본에서 독도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현의 오키섬은 북서쪽으로 157.5km나 떨어져 있다. 이 섬에서는 맨눈으로 독도를 볼 수 없다.

 

■ 독도의 날이란?

1900년 10월 25일은 고종 황제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독도 영유권) 제정일이다. 이를 기념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지난 2010년 이날을 ‘독도의 날’로 정하고 전국 단위 최초로 기념식을 열었다. 앞서 울릉도는 2005년 7월 ‘경북도 독도의 달 조례’를 만들었다.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죽도의 날)’ 조례 제정에 맞대응하기 위해서였다.

 

■ 독도의 옛 이름과 명칭

우산도, 삼봉도, 자산도, 가지도, 돌섬(석도)….

독도는 그 옛날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먼저 ‘우산도’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이름이다. 우산이라는 말은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조선 ’성종실록‘에는 독도를 ’삼봉도‘라고 적고 있다. 독도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관음도가 멀리서 보면 마치 세 개의 봉우리가 서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붙여졌다.

자산도라는 이름은 조선 ’숙종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안용복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가지도는 ’정조 실록‘에 나타나는 이름으로, 가지 즉 ’물개가 많은 섬‘이라는 의미다. 독도에는 강치라는 물개와 비슷하게 생긴 바다 동물이 살았는데, 이 강치를 ’가제‘로 불렀다. 그런데 ’가제‘를 한자로 쓰면 ’가지‘가 되어서 가지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행정 지명으로서 ’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쓴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독도는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이름도 있다. 1849년 프랑스의 고래잡이 배였던 ’리앙쿠르 호‘의 선장이 항해 중에 독도를 발견하게 돼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른다.

 

<하이드레이트>

■ 독도의 가치는?

독도는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화산섬이다. 따라서 드러난 것보다 바닷속에 잠겨진 부분이 훨씬 크다. 주변 바다 밑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천연가스가 얼음과 같은 형태로 고체화된 ’하이드레이트‘(사진)가 많다. 이는 석유의 매장 가능성이 높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태양광이 닿지 않는 수심 200m 아래에 있는 해양심층수 역시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식품과 미용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독도는 또 철새들이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해 철새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특히 괭이갈매기와 슴새, 바다제비의 번식지로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출처 : 소년한국일보 2017.10.24. , 2019.10.21. >

 

<읽기자료 2>

 

일본, 러일전쟁 때 독도에 눈독 … “주인 없는 땅” 우겨 편입

일본 문부과학성은 초?중학교 사회 수업에서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다루도록 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미 일본의 초?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선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 관료들 사이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이 잇따른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 사실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 영토”라 주장했다. 마쓰모토 영토문제담당상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 우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 현 행정구역에 편입시켰다. 최근엔 이날을 ‘다케시마(독도)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히 한국 땅인 독도를 일본이 집요하게 자국 땅이라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 고종 칙령 ‘울릉군수가 다스려라’

역사적으로 독도는 논란의 여지 없이 한국 땅이다. 512년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복한 이후 줄곧 한국의 영토에 속한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성종실록』『숙종실록』 등에도 독도는 우산도 또는 삼봉도로 불리며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고종은 1900년 10월 25일 발표한 대한제국 칙령(제41호)에서 울릉도의 이름을 울릉군으로 바꾸고 이곳에 군수를 파견해 다스리게 했다. 울릉군수 관할은 울릉도 전역과 죽도?석도 등 3개 섬이었다. 석도는 돌섬, 곧 독도를 가리킨다. 칙령 제41호는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섬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증거다.

 

■ 일본, 군사 요충지 탐내 억지 주장

일본이 독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건 러일전쟁 시기다. 1904년 일본은 러시아 군함을 정찰할 목적으로 동해에 군사용 망루를 설치하려 했다. 망루 설치 후보지로 검토한 것이 울릉도와 독도였다. 당시 독도에 대규모로 서식하던 강치(바다사자) 역시 일본이 탐내는 자원이었다. 강치의 고기?기름?가죽이 유용했기 때문이다.

군사적 요충지이자 수산자원의 보고라는 독도의 가치를 알게 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 현에 일방적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이때 독도를 무주지(無主地?주인 없는 땅)라고 강변했다. 당시 국제법에서 무주지는 선점한 나라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 일부 일본 학자는 “일본은 국제법상 요건을 충족시켜 독도를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켰다. 따라서 독도는 합법적인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뒤 직전까지 불법으로 빼앗은 영토를 반환했다. 하지만 독도에 대해선 지금까지 “일본이 획득한 영토”라는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학자 중에서도 “당시 독도는 무주지가 아닌 명백한 한국 영토였고 일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반박한다. 1905년 이후 일본에서 나온 지도에선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기했거나 일본 영토에서 뺀 사례가 흔하다. 56년 일본 건설성 지리조사소가 발행한 ‘지도일람도’가 그 중 하나다. 양보경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로 인식했다면 일람도엔 반드시 독도를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 지도에 독도가 빠진 것은 독도가 한국 고유 영토이자 한국에 반환해야 할 땅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2017. 3. 8.>

<읽기자료 3>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 역사 왜곡

 

일본의 문무과학성이 최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는 3개 출판사의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12종(3~6학년용)에 대한 검정을 승인했다. 그에 따라 일본의 초등학생들은 내년 새학기부터 ‘독도(일본명 다케시마)가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그릇된 주장이 담긴 내용을 공부하게 된다. 우리 정부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즉각 바로잡아 줄 것을 촉구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 고유의 땅’이라는 식의 기술과 시각 자료가 늘어났다.

특히 ‘한국의(독도) 불법 점령에 일본이 계속 항의하고 있다’는 등 구체적인 표현이 덧붙여졌다.

1982년 이후 일본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끊임없이 역사 왜곡을 진행해왔다. 이번에 승인한 4학년 교과서는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하거나,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를 실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의 역사 왜곡은 미래 일본의 주역이 될 어린이에게 잘못된 역사관과 정의관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된다. 이러한 역사 왜곡은 한일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아무리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달라지지 않겠지만, 두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 어린이들도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고민하고,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출처 : 소년한국일보 2019. 4. 10. >

 

<읽기자료 4>

우리 땅은 우리가 지킨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 독도지킴이 누가 있나

 

■ 강치를 기억하며

강치는 동해 주변 독도 바닷가에 살던 바다사자. 19세기경 3만~5만 마리 정도가 살았다고 전해지지만 1900년대 초반 일본 어부들이 가죽과 기름을 얻기 위해 강치를 마구 잡아들이면서 자취를 감췄다.

이 강치 조각상이 최근 식민지 역사 박물관(서울 용산구)에 기증됐다. 기증자는 청심국제중고교 학생 34명과 김성래 작가. 독도 관련 홍보 활동을 펼쳐온 청심국제중고교 연합 동아리 ‘해밀’ 소속 학생들은 어미 강치와 새기 강치 조각상을 디자인한 뒤 지난 4월 김성래 작가를 찾아가 조각상 제작을 부탁했다. 조각상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 중 약450만 원은 학생들이 학교축제 같은 행사에서 강치 디자인의 이름표나 볼펜을 만들어 팔아서 마련했다고.

학생들은 조각상 아랫부분에 ‘우리땅 독도에 살던 강치를 기억하며 동해바다 독도 수호의 작은 불씨가 되고자 강치상을 세우다’라는 글도 한글, 영어, 일본어로 적었다.

어미 강치와 새끼 강치 조각상은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다. ‘해밀’의 공동회장인 문소윤 양(15)은 “어미 강치는 새끼를 보호하고 일본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일본 쪽을, 새끼 강치는 우리나라 생태계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뜻에서 한국 쪽을 바라보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학생들이 대견해 제안을 선뜻 수락했다”면서 “사람들이 강치 조각상에 담긴 학생들의 뜻을 함께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독도는 나의 집

고(故) 김성도 씨는 독도의 주민이자 첫 사업자로서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증명했다.

10.21일 세상을 떠난 김 씨는 2009년 ‘독도수산’이라는 이름으로 독도 1호 사업자가 됐다. 2013년 이름을 ‘독도사랑카페’로 바꾸고 독도 선착장에서 거울, 손수건, 명함각 등 독도 관련 기념품을 파는 사업을 시작한 그는 2014년 1월, 2013년 사업실적에 대해 부가가치세 19만3000원을 국세청에 신고하고 납부했다. 당시 국세청은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납부된 국세(국가가 부과하여 거두어들이는 세금)로,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공고하게 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독도의 샘물이자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된 ‘물골’로 올라가는 998계단도 만들었다. 지난 2005년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153명의 국민성금으로 만들어진 ‘독도 호’를 기증받아 바다에 몰고 나가기도 했다.

< 어린이동아 2018. 10. 25.>

 

생각 열기

활동 1. <읽기자료1>을 읽고, 독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하시오.

 

활동 2. <읽기자료 2>를 읽고, 일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찾아보시오.

 

활동 3. <읽기자료2>를 읽고,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를 찾아 정리하시오.

 

활동 4. <읽기자료3>을 읽고, 역사 왜곡의 문제점에 대해 쓰시오.

 

활동 5. <읽기자료4>를 읽고, 독도지킴이에 대한 내 생각을 쓰시오.

 

생각 펼치기

독도와 관련된 신문기사, 뉴스, 책, 영상 등을 더 찾아보고 우리의 소중한 땅 독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또한 독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할 점은 무엇인지, ‘우리 땅, 독도’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학생글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전주양지초등학교 5학년 서윤아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실효적, 국제법적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이다. 이를 증명하는 근거가 많은데, 그 중에서 1802년 일본의 지리학자 하야시시헤이가 제작한 대삼국지도를 역사적 근거로 들고 싶다. 이 지도에 따르면 울릉도와 독도의 이름이 당시 일본 명칭으로 적혀있고 그 아래에 ‘조선의 것’이라는 해설까지 붙어있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 안용복은 일본에 직접 가서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문서를 받아오기도 했다.

국제법적 증거로는 ‘독도는 울릉군에 속한 땅이므로 울릉군은 울릉도와 석도(독도)를 다스린다.’는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발표로,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일본이 주장하는 1905년보다 5년이나 빠른 시점이다. 또한 독도는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에 더 가까이에 있고,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영토임이 인정되는 많은 증거가 있기에 독도는 한국의 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일본이 독도가 우리나라의 땅임을 인정하고 그것이 전 세계에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도 경비대원님들께
전주양지초등학교 5학년 오승민

독도 경비대원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양지초등학교 5학년 오승민입니다. 수업시간에 ‘독도’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겨 독도 경비대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어요. 영상을 찾아보다 독도 경비대원님들이 독도를 위해 어떻게 생활하시는지도 보게 되었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체력 단련을, 점심엔 일본군 정찰, 저녁에도 정찰을 하시며 하루 종일 힘들게 지내시는 걸 보았어요. 아침부터 계속되는 훈련 때문에 많이 힘드시지요? 저는 독도 경비대원님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본이 우리 독도에 접근해오면 출동하여 물리치는 장면도 보았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사명감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독도 행사가 취소되어 독도 경비대원님들께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이 편지를 쓰게 된 것도 독도 경비대원님들께 아주 작은 힘과 응원이라도 드리고 싶어서예요. 독도 경비대원님들, 독도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화이팅!

 

명백한 우리 땅, 독도

전주양지초등학교 5학년 홍혜서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한국 땅인 독도를 일본이 집요하게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역사적으로 독도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한국 땅이다.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성종실록, 숙종실록 등에도 독도는 우산도, 삼봉도라 불리며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고종은 1900년 10월 25일에 발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울릉도의 이름을 울릉군으로 바꾸고 이곳에 군수를 파견해 다스리게 했다. 칙령 제41호는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섬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증거이다.

일본이 독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건 러일전쟁 시기이다. 당시 독도에 대규모로 서식하던 ‘강치’ 역시 일본이 탐내는 자원이었다. 독도의 가치를 알게 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현에 일방적으로 편입시켰다. 독도를 무주지 즉, 주인 없는 땅이라고 강변하며 합법적인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본 학자 중에서도 “당시 독도는 무주지가 아닌 명백한 한국 영토였고 일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1905년 이후 일본에서 나온 지도에서는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기하거나 일본 영토에서 뺀 사례가 흔하다.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이자 한국에 반환해야 할 땅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독도는 명백히 우리의 땅이다.

/제작=전주양지초등학교 교사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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